과거와 현재, 종교와 세속이 공존하는 고도
도시에 흐르는 세 종교의 숨결
거리로 나서자 서로 다른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과 마주쳤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낯선 유대인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과 요르단에서 익히 봤던 무슬림 의상을 입은 사람들, 캐주얼을 차려입은 사람들까지 확연히 다르지만 도시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평화로워 보였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졌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도시는 오랜 시간 평화와는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예루살렘은 불모지인 사막지대에서도 전략적인 곳에 있어 이 도시를 차지하려는 민족 간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수천 년간 이어온 도시 쟁탈전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도시를 유대교와 기독교(천주교 포함), 이슬람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했다.
약 3000년 전 다윗 왕이 여부스로부터 이 땅을 정복해 왕국의 수도로 정하면서 유대인의 땅이 됐다고 한다. 이후 그의 아들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첫 성전을 세우고 난 뒤 이곳은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도시는 로마의 식민지가 됐고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은 채 2000년간 세계에 흩어져 살았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뿌리가 같다. 하지만 로마 식민지 시절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예수가 이곳에서 십자가에 달리면서 예루살렘은 비로소 기독교의 성지가 됐다.
무슬림에게도 예루살렘은 특별하다. 무함마드가 이곳 모리야 바위 위에서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해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 성지로 꼽는다. 아랍인들은 서기 638년 예루살렘을 정복해 수 세기 동안 이곳을 통치하며 바위 돔(황금 돔)과 알 아끄사 사원을 건설했다.
이스라엘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곳과 관련한 역사책 몇 권을 섭렵하고 와도 좋겠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따라붙는 재미가 훨씬 더할 것이다.
과거를 품고 오늘을 사는 이들
예루살렘 성으로 향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나 등장할 법한 작고 예쁜 성이 앞을 막아선다. 이 성은 16세기 오스만제국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올드 시티(old city)와 뉴 시티(new city)로 나뉜다. 예루살렘은 역사와 종교의 중심 도시이기 때문에 올드 시티에 볼거리가 더 많다. 총 8개의 성문이 있는 도시 내부에는 유대인 지역과 아르메니안 지역, 크리스천 지역, 무슬림 지역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은 컴퓨터와 인간이 바둑을 두는 요즘 시대에도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다. 한 무리의 꼬마들이 머리에 밥그
처럼 생긴 모자(키파)를 쓰고 내 앞을 지나갔다. 멜빵 바지에 남방을 챙겨 입은 모습이 앙증맞다. 깔깔거리며 떠드는 소리는 여느 나라 아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유대인 지역 통로를 따라서 걷다 보니 멀리 통곡의 벽이 나타났다. 헤롯왕 시절 세운 성전이 부서져 서쪽 일부만 남았다고 해서 서쪽 벽이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시절에도 이곳에 모여 울며 기도했다고 한다. 현재도 자신의 소원을 종이에 적어 벽에 끼우고 기도하는 유대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벽에 손을 짚고 머리 숙여 기도하는 사람들과 한쪽에서 종이에 소원을 적는 사람들의 모습이 간절해 보였다. 예루살렘에선 오랜 시간 민족과 종교 간 분쟁이 이어졌는데 통곡의 벽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들의 아픔과 눈물은 누구의 몫일까.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뉴 시티로 빠져나왔다. 잠시 과거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거리에 즐비한 의류 브랜드 매장과 전자제품 판매점, 카페와 레스토랑 등 유럽의 거리라고 해도 믿길 정도의 풍경이 이어진다. 조금 전 본 두꺼운 전통 복장의 유대인들과 대비되는 반바지·반소매 차림의 캐주얼을 입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내 눈엔 훨씬 익숙한 모습인데 낯설게 느껴졌다.
광장에선 농구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곳곳에 세워진 농구대에 서로 공을 넣겠다고 “패스!”를 연발하며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건너편 거리엔 선글라스를 쓰고 한 손에 커피를 든 사람들이 보였다. 그저 평범한 일상인데 조금 전 지나쳐온 유대인 마을과 자꾸만 오버랩되면서 ‘정말 같은 도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이곳에
예수가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1처소부터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를 짊어졌던 2처소, 십자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처음 쓰러졌다는 3처소 등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중심으로 재판 장소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길과 십자가에 달린 곳, 돌무덤에 묻힌 장소까지 사건 흐름에 따라 동선이 연결돼 있다.
아침 일찍 비아 돌로로사로 향했다. 출발 지점에 서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주변엔 예수와 성경이야기로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상점으로 가득했다. 입구부터 길게 이어진 계단과 사방으로 뻗은 조붓한 길이 마치 미지의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처럼 보인다. 말 그대로 예수의 시대와 현재가 만나는 교차로다.
예루살렘 성에서 나와 건너편 언덕으로 향했다. 이곳은 성경에 감람산으로 기록된 올리브산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곳으로, 건너편 예루살렘 성을 보며 눈물을 흘린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예수는 새벽까지 이곳에서 기도하다가 자신을 잡으러 온 병사들에게 끌려갔다.
올리브산 정상엔 전망대가 있다. 예루살렘이 한눈에 들어와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보는 풍광이 좋다는 숙소 주인장의 귀띔에 발걸음에 속도를 냈다. 경사가 완만해서 더운 날씨에도 지칠 정도는 아니다. 정상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멀리 이슬람의 성지인 바위 돔 사원이 보인다. 흰색과 회색 일색인 건물들 사이로 화려하게 황금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라고 하기에 너무 평온하다. 사진으로 찍어도 따뜻함이 오롯이 담긴다. 예루살렘의 이름 그대로 내일은 평화의 도시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 신들이 선택한 도시인 만큼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내내 평안을 내려주길 바랐다.
예루살렘=글·사진 이두용 여행작가 sognomedia@gmail.com
여행정보
아랍인이 사는 지역이 숙박비도 음식값도 가장 저렴하다. 배낭여행이라면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보자. 전 세계에서 모여든 젊은이들과 한 방에서 맥주 한 캔에 밤샘 수다를 떠는 추억도 만들 수 있다. 운 좋으면 예루살렘 지리에 익숙한 친구가 길라잡이도 해준다.
예루살렘과 맞닿은 팔레스타인은 최근까지 버스를 통해 드나들며 비교적 안전하게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과의 갈등이 잦아 현재는 불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