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와 인접한 싱가포르 투아스 지역은 출퇴근 시간에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러 온 근로자 통근버스가 한꺼번에 몰려서다. 투아스에는 노바티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 글로벌 제약사의 생산 공장이 입주해있다. 지난달 현지에서 만난 한 근로자는 “싱가포르 인력으로는 부족해 인근 말레이시아 근로자까지 투아스로 몰리고 있다”며 “임금이 높은 고급 일자리가 많다”고 말했다.
낮은 세금·고급 인력…글로벌 바이오사 몰리는 싱가포르·아일랜드
亞 바이오 허브로 탈바꿈한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2000년부터 ‘아시아의 바이오 허브’를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달리 자국 제약사가 없는 싱가포르는 낮은 세금과 고급 인력을 무기로 글로벌 제약사를 끌어들였다. 최고 법인세율을 17%로 낮추고 첨단기술 선도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에는 법인세를 최대 15년간 면제해준다.

생산과 연구중심으로 두 개의 바이오 단지를 조성한 정책도 주효했다. 투아스는 생산설비 중심의 바이오 클러스터다. 투아스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능력은 2013년까지 18만L 규모로 아시아 최대 수준이었다. 로슈, 론자 등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기업(CMO)이 설비를 공격적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투아스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바이오폴리스는 연구개발(R&D) 센터가 몰려있는 바이오 클러스터다. 일라이릴리 등 다국적 제약사가 이곳에 R&D 센터를 세웠다. 한 해 배출되는 생명공학 전공자는 6000여명에 그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이들 모두를 국비로 해외 제약사에 교육시킨다.

‘켈틱 타이거’ 명성 되찾은 아일랜드

싱가포르처럼 글로벌 바이오기업이 몰리는 또 하나의 나라가 있다. 바이오산업을 통해 ‘켈틱 타이거’의 명성을 되찾고 있는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유럽의 정보기술(IT) 강국으로 꼽혔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아일랜드 경제성장률은 연 -6.4%까지 떨어졌다. 회복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아일랜드 경제는 불과 5년 만에 연평균 성장률 5%를 회복했다. 몰려드는 글로벌 바이오기업들 덕분이다. 아일랜드는 더블린과 코크에 두 개의 바이오 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각각 지원·영업과 제조로 특화돼 있다.

아일랜드의 매력은 낮은 세율이다. 법인세율은 12.5%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특허 소득에 대해서는 법인세율을 6.25%로 낮췄다. R&D 비용은 최대 37.5%까지 세금을 감면해준다. 특허 매입 시 인지세 면제 등 아일랜드에 생산설비나 R&D센터를 세운 기업에 다양한 세액 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2011년에는 예산 740억원을 투입해 국립 바이오프로세싱 연구·교육기관(NIBRT)을 세워 매년 4500여명(2015년 기준)의 고급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화이자, 로슈,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 75개를 유치했다.

인프라 못 따라가는 한국 바이오정책

한국은 바이오 클러스터에 필요한 3박자 가운데 인프라와 연구인력은 갖췄지만 조세 혜택 등 글로벌 기업을 유인할 정책은 부족하다.

송도의 바이오 생산능력은 연 36만L로 아시아 최대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추가 증설이 완료되는 2020년께는 연 60만L 규모로 세계 단일 바이오단지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게 된다.

국내에선 연간 5만2000명의 생명공학 관련 전공자와 의사 3500여명이 배출되는 등 인적 자원도 풍부하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법인세율을 낮춰 글로벌 제약사를 유치하고 바이오 기술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해야 국내에도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싱가포르=조미현/김형호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