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서도 깜짝 놀란 이한구의 '공천 칼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비박(비박근혜)계 현역 의원들을 대거 컷오프(공천 배제)하면서 공천관리위원회를 이끄는 이한구 위원장(사진)과 이에 강력히 반발하는 당내 비박계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 위원장의 고강도 ‘공천 칼질’에 대해 친박(친박근혜)계 내부에서조차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온다. 낙천한 현역 의원들은 이 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와 코드를 맞추며 청와대와의 물밑 교감을 통해 특정 계파 소속 의원을 찍어내는 사천(私薦)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천관리위원회는 17일 현재 253개 선거구 중 250곳의 공천 방식을 결정했다. 이 가운데 경선을 치르는 곳은 총 141곳으로 전체의 56.4%에 그쳤다. 사실상 전략공천인 여성·우선추천 및 단수추천으로 후보자가 결정된 곳은 나머지 109곳이다. 김무성 대표가 공언해 온 ‘100% 상향식 공천’이 무위에 그친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 16일 비박계 현역의원이 탈락한 8개 단수추천지역 및 우선추천지역의 최종 심의를 보류하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이 위원장은 이에 대해 “다 설명해줬는데도 딴소리한다. 바보 같은 소리다”며 당대표를 향해 거침없는 발언으로 맞대응했다.

올초부터 당 안팎에서 흘러나온 ‘대구 현역 물갈이’설과 맞물려 비박계 현역 컷오프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공천관리위원회 수장에 오른 직후 “현역이라도 성과가 제대로 나지 않거나 인기가 없으면 공천하지 않겠다는 게 원칙”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매섭게 컷오프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이 위원장에 대해 다양한 당내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위원장은 자신이 4선을 한 지역구(대구 수성갑)에서 일찌감치 20대 불출마 선언을 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적다. 평소 소신대로 ‘불량 의원’들을 걸러내고 주요 친박계 후보 중심의 공천 진용을 구축해 박근혜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주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천 심사과정에서 이 위원장 스스로 ‘정무적 판단’이라는 자의적인 공천 기준을 실토하며 향후 당내 계파 갈등의 불씨를 키웠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 위원장은 지난 16일 유 의원의 공천 여부 결정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 “굉장히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며 “파장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고려를 많이 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일각에선 총선 뒤 현 정부의 고위직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 위원장 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인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