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린은 프로 전향 2개월 만에 시드전을 수석으로 통과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에 대해 “속도가 너무 빨라 부담이 크다”면서도 “평생 한 번뿐인 신인왕에는 꼭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이효린은 프로 전향 2개월 만에 시드전을 수석으로 통과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에 대해 “속도가 너무 빨라 부담이 크다”면서도 “평생 한 번뿐인 신인왕에는 꼭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효주(21·롯데)와 전인지(22·하이트진로)를 이을 초대형 신인.’

지난해 11월 국내 골프계는 ‘슈퍼 루키’의 출현으로 술렁였다. 고교 3학년이던 이효린(19·미래에셋)이 전남 무안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투어 시드전에서 20언더파로 ‘깜짝 수석’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2위그룹을 6타 차로 따돌린 압도적인 성적이었다. 차기 시즌 출전권이 걸린 시드전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챔피언까지 참가해 나흘간의 생존경쟁을 벌이는 ‘지옥의 레이스’다. 그는 최종일에 비바람이 부는 악천후에도 보기 없이 7언더파를 몰아치는 집중력을 발휘해 순위표 맨 꼭대기에 이름을 올렸다. 이효린은 “비 오는 날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박현주 회장이 인정한 실력·멘탈

'거물 신인' 이효린 "박현주 회장과 세 번 '라운드 면접'…OK 받았죠"
이효린은 ‘언젠간 일을 낼 것’이란 기대를 많이 받던 선수다. ‘타고난 골퍼’라는 말을 들을 만큼 성장이 빨랐다. 핸디캡 5의 골프광인 아버지에게 처음 골프를 배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멋모르고 채를 휘두르는데도 공을 척척 때려내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레슨을 받게 했다.

아버지 이정전 씨는 “하루 8시간씩 파3 골프장을 돌게 했는데 싫다는 내색을 보인 적이 없어 속으로 놀랐다”고 했다. 이효린은 스마트폰을 끊고 매일 골프 일기를 썼다. 그 후 1년 만에 전국대회인 일송배에서 고등학생 언니들을 제치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엘리트 코스’를 초고속으로 밟았다. 국가대표 상비군(2013년)을 거쳐 지난해 상반기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거침이 없었다. 9월에 KLPGA 준회원, 10월에 정회원을 따내더니 11월엔 시드전을 수석으로 통과했다. 프로 전향 2개월 만의 일이다. 이효린은 “속도가 너무 빨라 부담이 크다”면서도 “평생 한 번뿐인 신인왕에는 꼭 오르고 싶다”고 말해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공들여 영입한 미래형 인재다. 지난해 6월부터 세 번 ‘라운드 면접’을 봤다. 아마추어 때부터 그를 눈여겨본 박 회장은 “첫 라운드에서 실력, 두 번째 때 인성, 세 번째엔 멘탈을 봤다”며 “집중력과 화끈한 승부기질이 있어 올해 2승은 거뜬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 뒤엔 LPGA에서 뵙고 싶어요”

이효린은 장타자다. 안정적으로 255야드를 보내고 길게 칠 필요가 있을 때는 270야드도 쉽게 때려낸다. 여기에 ‘송곳 아이언’까지 갖췄다. 115야드 안팎에서 쇼트 아이언샷을 특히 잘 친다. 그린 적중률이 90%에 달한다.

짧은 구력에도 빨리 골프를 습득한 남다른 비결이 있을까. 그는 “부모님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했다. 사업가인 아버지는 축구선수를 꿈꿨던 만능 스포츠맨이었고 어머니(이성자 씨)는 실업팀에서 10년 넘게 뛴 하키선수 출신이다. 엄마 얘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엔 금세 웃음이 번졌다.

“엄마도 골프 싱글인데 임팩트가 장난이 아니에요. 완전 남자 골프 같다니까요!”

강한 스포츠우먼의 커리어를 쌓고 있지만 그는 원래 노래 부르기, 그림 그리기, 책 읽기,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감성 소녀’다. ‘몰아치기 역전’에 능한 그답게 하루 세 편 이상의 영화나 두세 권의 책을 몰아 보는 게 취미다. 한때 가수를 꿈꾸기도 했다.

“꿈을 말하니까 아빠가 저를 많은 사람 앞으로 데려갔어요. 노래를 불러보라고…. 제가 우물쭈물하자 아빠가 권하신 게 골프였어요. 그게 운명이었나봅니다.”

그는 요즘 비거리 늘리기와 쇼트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강철 체력이란 평가에도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서다. 전남 해남에선 오전 5시 반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체력훈련을 했고, 태국에 가서는 실전형 쇼트게임을 보완했다.

그의 일기장엔 2020년까지의 목표와 계획이 빼곡히 적혀 있다. 남자친구는 딱 서른 살에 사귈 작정이다. “근사하지 않으냐”며 그는 박인비(28·KB금융그룹)처럼 멋진 투어 동반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하나씩 목표한 대로 나아가고 싶어요. 4년 뒤에는 제가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기대하셔도 됩니다. 하하.”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