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6월23일 오후 4시22분

국민연금이 26일 SK(주)와 SK C&C의 합병을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민간기구인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개최한다. 기업 합병과 같은 중요 경영안건을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위원회에서 다루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경제계의 오랜 지적에도 국민연금이 ‘안건의 민감성’을 이유로 위원회에 결정을 떠미는 모양새다. 이런 양상이 반복되면 ‘연금사회주의’ 논란도 가열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마켓인사이트] 눈치보는 국민연금…SK-SK C&C 합병 찬반, 민간위에 떠넘겨
○삼성, 국민연금 태도 ‘예의주시’

[마켓인사이트] 눈치보는 국민연금…SK-SK C&C 합병 찬반, 민간위에 떠넘겨
23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는 최근 SK(주)와 SK C&C 합병에 대한 찬반을 의결권행사 전문위에서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결권행사 전문위는 24일 회의에서 합병에 대한 찬반을 결정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 전문위 개최를 요청한 것은 합병에 대한 찬반을 기금운용본부가 자체 결정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이찬우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국민대 교수)은 “국민연금이 찬반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주주가치 훼손’”이라며 “하지만 계량지표를 통해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SK C&C와 SK(주)의 합병비율(1 대 0.74)이 SK C&C의 대주주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일가에 유리하게 책정됐다는 일각의 비판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일가는 SK C&C 지분 49.35%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SK(주) 지분율은 0.04%에 불과하다. SK 측은 자본시장 관련 법률에 따라 기간별 시가를 가중 평균해 합병 비율을 산출한 만큼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회의가 주목을 끄는 것은 오는 7월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를 앞두고 향후 국민연금 태도를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지난 4일 삼성물산 지분 7.12% 보유 사실을 전격 공개한 이후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며 각종 소송을 제기하는 등 삼성 측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국민연금, 주주가치만 봐야”

삼성도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의결권 행사 여부를 자체 결정할 땐 반대 비율이 많지 않았다. 최근 1년간 벌어진 14건의 합병 및 영업양수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이 반대 또는 기권한 사례는 세 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의결권행사 전문위를 거쳤던 세 개 안건에서는 모두 반대표가 나왔다.

이번 SK 합병안의 경우 주가(19만5500원)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17만1853원)을 14%가량 웃돌고 있어 반대할 명분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의결권행사 전문위에서 반대 의견은 소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설사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하거나 기권을 하더라도 합병안은 주주총회에서 통과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SK그룹은 SK(주) 지분 31.87%를 가지고 있다.

재계는 기업의 주요 경영전략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현상을 우려했다. SK만 하더라도 ‘엘리엇과 삼성의 갈등’ 때문에 의결권행사 전문위 개최라는 ‘돌발변수’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향후 감사원 감사 등에서 제기될 수 있는 책임문제를 피하기 위해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 전문위를 활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훼손 여부를 따지려면 여론을 살피기보다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좌동욱/서기열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