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 바코드 달고 서점에 등장한 컬러링북
지난 2월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출간한 컬러링북 뉴욕 스케치는 현재 예스24, 인터넷교보문고, 알라딘 등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20~40% 할인 판매되고 있다. 신·구간을 막론하고 할인 폭이 15%를 넘지 못하도록 한 도서정가제 규정을 위반한 것이지만 지금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 이 컬러링북은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부여받은 ‘책’이 아니라 ‘문구’이기 때문이다.

자음과모음 관계자는 “이전에 몇 종의 컬러링북을 책으로 낸 적이 있지만 이 컬러링북은 미술 공부용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해 도서 대신 문구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ISBN은 책을 식별할 수 있는 고유번호체계다. 책을 출판할 때 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해 ISBN을 받는다. ISBN을 받은 도서는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뉴욕 스케치는 977·978 등으로 시작하는 ISBN 대신 880으로 시작하는 13자리 표준상품식별코드를 갖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대부분의 컬러링북이 일반 도서로 분류돼 도서정가제를 적용받고 있는 상황에서 뉴욕 스케치만 일반 상품으로 판매되면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흩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컬러링북, 유아용 헝겊책, 스티커북 같이 책과 문구의 경계에 있는 상품들은 판매의 융통성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컬러링북은 비밀의 정원(클)을 시작으로 출판계 주요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교보문고 5월 마지막주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20위 안에 15종이 컬러링북이다. 문제는 뉴욕 스케치가 ‘문구’인데도 서점에서 일반 도서처럼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스24 관계자는 “그동안 과세상품이나 비과세상품 모두 도서 카테고리에서 판매해 왔다”며 “과세상품으로 판매할지 비과세상품으로 판매할지는 출판사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컬러링북을 여럿 출간한 한 출판사 대표는 “누구나 할인 판매의 유혹을 느끼고 있지만 도서정가제 취지에 맞춰 책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를 문구라고 주장한다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문구로 분류된 것들이 할인 폭을 무기로 일반 도서와 결합상품으로 묶인다면 도서정가제 취지를 흐릴 위험이 있다”며 “서점에서는 책과 별도로 판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안만 있는 컬러링북을 책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번 사례를 통해 컬러링북, 유아용 헝겊책, 스티커북 등이 책인지에 대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일환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인쇄산업과장은 “컬러링북이나 스티커북 같은 것을 책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다음주 열리는 출판유통심의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