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 기요미즈데라의 단풍. 김경우 作. 캐논 5D Mark2, 17~40㎜L, F8, 1/64sec, ISO 100
일본 교토 기요미즈데라의 단풍. 김경우 作. 캐논 5D Mark2, 17~40㎜L, F8, 1/64sec, ISO 100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처럼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주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진을 보는 순간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시곗바늘을 되돌려주니까요. 사진을 찍는 데 정석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즐겁게 찍고 추억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요. 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 이왕이면 잘 찍어서 스스로도 만족하고 남들한테 칭찬도 들으면 좋겠지요. 여행작가들에게 이들이 찍은 가을 사진과 함께 사진 찍을 때 도움이 되는 조언을 들어봤습니다. 가을여행의 추억을 좀 더 멋있는 장면으로 남기시길 바랍니다.

농염한 기요미즈데라의 만추(晩秋) - 일본 교토

가을이면 교토 전역은 빨갛고 노란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봄의 교토를 막 피어나는 소녀에 비유한다면 가을의 교토는 세련되고 농염한 여인을 연상케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17개나 품은 곳이라 볼 것도 많지만 꼭 한 곳만 가야 한다면 기요미즈데라(청수사)를 추천합니다.

8세기 말에 세워진 유서 깊은 사찰로,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 맞춤으로만 만든 건축 기법이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새빨간 단풍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하죠. 서쪽을 마주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본당의 모습은 교토 관광포스터에 단골로 등장합니다. 해질 무렵, 하늘도 단풍도 불타는 듯한 경관은 가히 압권이고요.

기요미즈데라의 단풍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방문 시점입니다. 교토의 단풍은 한국보다 좀 늦은데 11월 중순부터 11월 말쯤 방문해야 새빨간 단풍을 만날 수 있죠. 촬영할 때 가장 좋은 시간은 일몰 직전입니다. 하늘이 노랗게 물들고, 늦은 오후의 빛을 받으면 단풍은 마치 붉은 페인트라도 뿌린 듯한 색감을 냅니다. 그 색깔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해가 지기 약 1시간 전쯤에 올라가 기다려 찍었습니다.

촬영 Tip

일몰이나 일출을 촬영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노출차입니다. 빛이 너무 세기 때문에 하늘의 질감을 살리면 단풍이 새까맣게 나오고, 단풍의 색감을 살리면 하늘이 하얗게 찍히죠.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노출차를 줄여주는 ND그라데이션 필터입니다. 필터의 투명한 부분을 아래 단풍 쪽에, 어두운 부분을 하늘에 두고 사진과 같이 노출차를 줄여주면 더 나은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김경우 여행작가 ichufs@naver.com
호주 빅토리아주 브라이트 시티의 단풍터널. 성연재 作. 캐논 5D Mark2, 70~200㎜, F7.0, 1/640sec, ISO 800
호주 빅토리아주 브라이트 시티의 단풍터널. 성연재 作. 캐논 5D Mark2, 70~200㎜, F7.0, 1/640sec, ISO 800
남반구에서 만난 클래식 카 - 호주 브라이트 마을

4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반구에 있는 호주에는 이미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죠. 이름도 생소한 호주 빅토리아 북쪽의 작은 마을 브라이트를 찾은 것은 단풍 때문이었습니다. 단풍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어느 여행자의 말만 듣고 무작정 차를 북쪽으로 몰았던 것이죠. 여행은 더러 계획보다 운에 맡겨야 할 때가 있어요.

브라이트는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로, 호주 은퇴자들이 누구나 살고 싶어할 만큼 풍경이 아름답고 목가적인 곳입니다. 도착하니 맑았던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면서 단풍 짙은 가로수 터널이 마치 동굴처럼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다 또다시 하늘이 누런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만약 하늘이 아주 맑으면 사진과 같은 분위기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촬영을 위해 카메라 설정을 마치자 갑자기 낡은 클래식카 하나가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왔습니다.

이때다 싶어 셔터를 눌렀어요. 차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도 단풍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느낌은 사뭇 달랐습니다. 또한 큰 화물차가 지나가면서 떨어진 단풍잎을 하늘로 흩뿌리는 사진도 있었지만 클래식 차량이 주는 멋스러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촬영 Tip

사진을 찍기 전, 카메라 설정에 신경을 썼습니다. 좀 어두웠기 때문에 ISO를 800 정도로 맞추고, 바닥에 깔린 낙엽들도 담고 싶어 조리개도 7.0으로 조정했습니다. 특히 언제 어디서라도 촬영할 수 있도록 카메라 렌즈 덮개 따위는 가방 깊숙이 넣고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클래식 카가 지나가는 장면을 순식간에 촬영할 수 있었어요.

성연재 여행작가 jyjbaby36@naver.com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문유선 作. 캐논 1DS Mark2, 70~200㎜, F5.6, 1/500sec, ISO 200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문유선 作. 캐논 1DS Mark2, 70~200㎜, F5.6, 1/500sec, ISO 200
물, 가을을 담다 -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지금까지 외국에서 만난 가을 풍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10월의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입니다.

거대한 국립공원을 채운 초록, 빨강, 노랑 등의 다채로운 색깔이 다양한 톤으로 변주돼 바람에 일렁이는 풍경은 압도적입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무한히 감사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100% 담아낼 수 없다는 것에 한계도 느꼈습니다. 자연은 실제로 마주할 때 가장 감동적이니까요. 아직 붉게 물들지 않은 초록 숲이 수면 위로 비칠 때, 그 위로 떨어지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한동안 멍했습니다.

바람이 불고 수면이 일렁이자 눈앞의 모든 것이 유화처럼 변해갔습니다.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에 느꼈던 바람, 물소리, 공기, 온도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기억나 행복해집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고민도 많았습니다. 유속이 빨라지면서 수면 위의 모든 것이 흔들렸습니다. 저속으로 촬영하고 싶었지만 물에 떨어진 단풍잎까지 흔들리면 애매모호한 이미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복잡한 배경 위에 떨어진 단풍잎이 도드라지도록 촬영하고 싶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단풍을 더 부각하기 위해 조리개를 열고 아웃포커스 효과를 냈습니다.

촬영 Tip

초보자라면 다양하게 무엇이든 촬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로나 세로, 얕거나 깊은 심도로, 느리거나 빠른 셔터스피드 등으로 찍다 보면 어느 순간 괜찮은 사진이 많아지고, 점점 사진 촬영이 즐거워집니다. 날씨 좋은 가을, 자주 찍고 많은 추억 쌓으시기 바랍니다.

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스위스 아펜첼 소몰이 축제. 이동미 作. 캐논 5D Mark2, 24~70㎜, F8, 1/350sec, ISO 250
스위스 아펜첼 소몰이 축제. 이동미 作. 캐논 5D Mark2, 24~70㎜, F8, 1/350sec, ISO 250
동화 속 목동들이 눈앞에 - 스위스 아펜첼

지난해 가을, 스위스의 아펜첼 지방으로 출장갔을 때입니다. 매년 봄 아펜첼의 목동들은 소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 풀을 먹이면서 여름 내내 우유를 짜고 치즈를 만듭니다. 그리고 가을이 돌아오면 소떼를 몰고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데, 이때 열리는 것이 소몰이 축제입니다.

동화 속에서나 보던 목동들은 21세기에도 살고 있었습니다. 이날을 위해 목동들은 색이 또렷한 꽃을 검은 모자에 꽂고 전통 복장으로 차려 입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종을 소의 목에 매어 내려오죠. 어린 목동이 모는 염소 떼가 가장 앞에 나서고, 건장한 목동 네 명이 요들송을 부르며 뒤를 따릅니다. 이어서 큰 종을 단 소 세 마리가 내려오고, 나머지 몸집이 작은 소들은 차례로 따라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목동의 아버지와 소몰이를 도와주는 충견이 장식하죠. 아직 가을이 깊어지지 않을 때 열리는 행사라서 푸른 배경이 깔려 있지만 그동안 만난 가을 풍경 중 가장 이국적이고 인상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촬영 Tip

날이 흐렸고, 찍으려는 목동과 동물들이 모두 움직였기 때문에, 또렷하게 찍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대상보다 낮은 위치에서 찍어 밋밋하지 않고, 좀 더 역동적으로 보일 수 있게 노력했죠.

이동미 여행작가 ssu㎜ersun@hanmail.net
경기 화성 공룡알 화석산지의 갈대. 김병구 作. 캐논 1DX, 70~200㎜, F5.6, 1/250sec, ISO 100
경기 화성 공룡알 화석산지의 갈대. 김병구 作. 캐논 1DX, 70~200㎜, F5.6, 1/250sec, ISO 100
갈대 바닷 속으로 - 경기 화성 공룡알 화석산지

불쑥 찾아온 찬바람을 고요하게 느끼고 싶다면 경기 화성의 공룡알 화석산지를 찾아가 보세요. 갈대들이 한데 모여 바다를 이루는 가을 명소지만,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1999년에 시화호 간석지의 육지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실시한 기초조사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돼 천연기념물 제414호로 지정됐습니다.

무엇보다 저녁에 갈대밭 속으로 해가 저무는 풍경을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녁이라고 해서 다 같은 저녁이 아니며, 가을이라고 다 같은 가을이 아닙니다. 붉게 타들어가는 하늘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황색의 갈대는 가을이 아니면 보기 힘든 풍경이죠. 가을과 저녁이 마주할 때의 고즈넉함이 이곳에 존재합니다.

촬영 Tip

‘역광’이라는 단어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해질 무렵 넓은 풍경보다 눈앞의 사물에 집중하면 배경은 단순해지고 ‘순광’에서 지나치기 쉬운 솜털 같은 디테일과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노출도 해가 아닌 갈대에 맞춘다면 기대 이상의 드라마틱한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김병구 여행작가 kenism@gmail.com
가을의 오색 빛깔 설악을 만나다. 오윤석 作 .파나소닉 GH4, 12~35㎜, F5.0, 1/800sec, ISO 400
가을의 오색 빛깔 설악을 만나다. 오윤석 作 .파나소닉 GH4, 12~35㎜, F5.0, 1/800sec, ISO 400
가을의 오색 빛깔을 만나다 - 설악산

오랜만에 찾은 설악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안개가 점점 심해져 걱정이 됐죠. 그러나 안개와 단풍의 운치 있는 조화를 찍는 것도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계령에서 등산을 시작해 귀떼기청봉과 중청으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 끝청봉에 거의 다다를 때쯤이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멋진 오색 단풍의 물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라보는 도중 해가 비쳤다가 갑자기 구름이 산 일부분을 덮었습니다. 밝았다가 어두워지면서 묘한 대비가 나타났을 때 셔터를 눌렀습니다.

촬영 Tip

흐린 날은 산 전체를 찍기보다는 도드라지게 보이고 싶은 부분을 찍는 게 더 디테일합니다. 또한 초점을 그늘진 음지에 놓고 촬영하면 환한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윤석 여행작가 park11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