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5일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 등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뜻을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권 육군참모총장. 연합뉴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5일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 등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뜻을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권 육군참모총장. 연합뉴스
윤일병사태 '일벌백계' 방침에 육참총장 사의 표명
"검경 신뢰 저하, 책임져야" 지적에 경찰청장도 사의


박근혜 대통령이 5일 국무회의에서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 사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검찰과 경찰의 무능을 공개 질타하자 군과 경찰의 수장이 불과 8시간 남짓만에 잇따라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이들의 사표를 금명 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박 대통령이 이날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일벌백계'(一罰百戒)의 고강도 문책 방침을 천명한 뒤 오후 5시30분께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군수뇌부 문책론이 현실화됐다.

권 총장은 전날 국방위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사의표명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또 박 대통령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확인 과정에서 마찰을 빚은 검찰과 경찰을 질책하며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질책한 뒤 이성한 경찰청장의 사의 표명이 나왔다.

지난주 닷새간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박 대통령이 윤 일병 사건 등과 관련해 심상치 않은 여론 악화를 의식, '엄정 대처' 방침을 천명하며 '추상같은' 모습을 보이자마자 핵심 책임자들이 줄줄이 옷을 벗겠다고 나선 것이다.

특히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이날 일벌 백계 언급은 군 당국이 가해병사들의 상습적 폭행사실을 은폐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일각에서 '입영거부'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이와 관련, 세간의 악화된 민심이 자칫 세월호 참사 후 국정 정상화에 시동을 건 2기 내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긴급 처방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모든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잘못 있는 사람들을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 또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여지를 완전히 뿌리 뽑기 바란다"고 말했다.

군통수권자로서 가해병사들은 물론 군수뇌부 등에 대한 문책이 가볍다는 여론을 가감 없이 수용해 일벌백계의 의지를 공표함으로써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셈이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일벌 백계 방침이 나오자 군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 시도와 안이한 대처 때문에 군 수뇌부로 문책의 불똥이 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고, 권 총장은 이날 오후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뜻을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달했다.

군수뇌부 문책이 현실화되면서 어디까지 문책론이 확산될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야당은 윤일병 사건 당시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에 대한 문책론을 들고 나왔다.

이와 맞물려 지난 6월30일 취임한 한민구 국방장관도 문책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여권 내에서는 권 육참총장의 사의 표명으로 김 안보실장과 한 국방장관이 문책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문책에 성역이 없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야당 일각에서 제기한 '사과 표명'은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있어서는 안 될 사고로 귀한 자녀를 잃은 부모님과 유가족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참담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한 국방장관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전날 발표한 자신의 대국민 사과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 대통령은 "적폐를 뿌리 뽑는 계기를 만들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이 직접적인 '사과' '유감' 등의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일벌백계를 강조하면서 "참담하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에둘러 적절한 수준의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윤일병 사건 등 계속되는 병영 내 폭행ㆍ사망 사건을 "과거부터 지속해온 뿌리깊은 적폐"로 규정하고, 국가혁신 차원에서 대처해 나갈 것임을 예고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엄정 대처 의지는 2기 내각 출범과 함께 새누리당의 7·30 재보선 승리를 계기로 되찾은 국정운영의 동력을 어떻게든 살려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이 이날 회의에서 "국민의 고통을 대변하는 진정한 국민의 대변자가 돼달라는 것이 민의였다"고 재보선 결과를 평가한 뒤 민생경제 살리기에 적극 나서달라고 장관들에게 주문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특히 선임병들의 잔혹한 폭행을 통해 사망에까지 이른 윤일병 사건이 국민적 관심 사안으로 부상한데다 정부의 대처가 미흡할 경우 군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정부 불신으로 민심이 악화될 수 있는 만큼 조기에 이를 차단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군이 윤일병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 활성화와 국가혁신에 걸림돌이 된다"며 "이 문제는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라고 말했다.
5일 오후 사의를 표명한 이성한 경찰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사의를 표명한 이성한 경찰청장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성한 경찰청장 역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변사 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의 책임을 지고 5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 청장은 이날 오후 안전행정부에 사표를 제출했으며, 신임 청장을 선발하기 위한 경찰위원회는 6일 오전 열릴 예정이다.

신임 청장으로는 강신명 서울지방경찰청장, 최동해 경기청장, 이인선 경찰청 차장, 안재경 경찰대학장, 이금형 부산청장 등이 거론된다.

이 청장은 이날 오후 6시 경찰청 기자실에 내려와 "제 소임이 여기 정도인 것 같다. 여러 가지 경찰이 책임질 문제가 많아 청장인 제가 끌어안고 떠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있었던 잘못은 제가 안고 가겠지만, 국가와 국민이 있는 한 경찰은 계속 존재할 것"이라며 "앞선 과오는 제게 다 덮어주시고 남아 있는 경찰관들이 사기를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경찰을 바라봐 달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퇴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경찰이 실수한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일선에만 책임을 물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경찰의 일신을 위해 청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작년 3월 29일 경찰청장에 임명된 이 청장은 "1년 4개월 동안 보람있게 일을 해 왔고 무난하게 지냈다"며 "그러나 경찰 업무가 광범위하다 보니 조금만 방심하면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런 방심하는 일이 없도록 남아 있는 지휘관과 참모들이 잘 챙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년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데 대해 이 청장은 "임기를 채우면 좋겠지만 채우지 못할 일이 생기면 임기만을 얘기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로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 청장은 기자회견 직후 직원들의 환송 인사를 받으며 경찰청사를 떠났다.

경찰 안팎에서는 그동안 유씨 변사 사건의 경찰 초동수사가 부실해 시신의 신원 확인이 40일 지연된 것과 관련해 수뇌부 책임론이 제기돼왔다.

특히 최근 전남 순천에 거주하는 주민이 송치재 별장의 비밀공간 가능성을 여러 차례 제보했지만 경찰이 묵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청장 교체론에 힘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검·경의 부실수사를 강하게 질책하며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안전행정부 장관이 경찰청장 단수 후보를 추천하면 경찰위원회는 면접을 거쳐 '신임 경찰청장 임명 제청 동의안'을 안행부에 제출한다.

경찰위원회가 6일 오전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차기 청장이 내정된 것으로 보인다.

강 서울청장 등 차기 청장 후보들은 이 청장의 사의 표명 소식이 알려진 후 전화통화에서 "아직 연락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번에 첫 경찰대학 출신 경찰청장이 나올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