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오솔길 들어서면 야생차 짙은 향, 몸을 감싸고 유배 온 다산도 느꼈겠지, 그 치유의 힘을…
‘남도 답사 1번지’로 널리 알려진 전남 강진은 사실 구구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 북쪽에는 월출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남쪽에는 구강포구에 짙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 갯벌은 물론 하천과 평야까지 담고 있어 어디를 가도 화사하기 그지없다. 이 아름다운 땅을 한국 관광의 미래를 열어갈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함께 돌아봤다.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앞줄 네번째)이 일행과 함께 백련사로 가고 있다.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앞줄 네번째)이 일행과 함께 백련사로 가고 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그 유구한 이야기

“강진은 사실 처음 찾는 곳이지만 한국적인 풍광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토속적인 느낌이 잘 묻어나네요. 무엇보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이어서 더 뜻깊은 것 같습니다.”

강진까지 오는 길이 제법 고단할 법도 한데 변추석 사장의 표정은 환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내관광 활성화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떠안고 나온 여행길이지만 여행은 늘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가 보다.

변 사장의 말대로 강진 곳곳에는 다산의 흔적이 면면이 깃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실학사상의 산실이 된 곳이 바로 다산초당이다. 다산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강진에 유배돼 18년 세월을 보내게 된다. 황사영 백서사건은 천주교 신자 황사영이 천주교회 베이징교구의 주교에게 조선에서 일어난 혹독한 박해의 전말과 그 대책을 흰 비단에 써서 보냈다가 발각된 일을 말한다.

황사영이 다산의 조카사위여서 다산은 물론 형제들에게도 불똥이 튀고 말았다. 손위 형 정약종은 참수를 당하고 둘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뿔뿔이 흩어져 유배를 가게 된 것. 유배를 당하면 삶의 의지마저 잃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다산은 달랐다.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베트남의 영웅 호찌민이 가장 애용하고 지금까지도 목민관이 즐겨 탐독하는 ‘목민심서’를 비롯해 ‘경세유표’ ‘흠흠신서’까지 500여권의 책을 저술한 곳도 다산초당이다.
다산초당
다산초당
중세의 르네상스맨 정약용의 흔적

다산초당은 다산의 담백한 성격답게 아담하면서도 고졸한 맛을 풍긴다. 본채와 제자들이 학문 탐구에 매진했던 부속건물인 ‘서암’ ‘동암’ 외에는 이렇다 할 건물도 없다. 마당 앞에는 자그마한 반석이 놓여 있다. ‘차를 끓이는 부뚜막’이라는 뜻의 다조(茶)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솔방울을 지펴 끓인 물로 자생차를 우렸다고 한다. 다조를 살펴본 변 사장이 방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다산은 진정한 르네상스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문, 건축, 행정, 정치 등 어떤 분야에서도 정점에 서 있던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이 작은 공간에서 후대에 남을 만한 저작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초당 서편에는 선생이 ‘정석(丁石)’이라고 글씨를 새겨 놓은 ‘정석바위’가 있고 초당 뒤편 맑은 샘이 흐르는 약천이 살림살이의 전부다. 초당 옆의 연못만이 선생의 가장 큰 호사였다. 바닷가의 돌을 직접 가져와 만든 연못에는 조그만 봉을 쌓아 ‘석가산’이라고 이름했다. 나무 홈통을 이용해 산 속 물을 떨어지게 만들어 ‘비류폭포’라 이름지었다.

동암에서 조금 뒤로 돌아가면 ‘천일각’이 있다. 다산은 특히 형인 정약전과 우애가 돈독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흑산도로 유배간 형을 그리며 올랐던 누각은 쓸쓸하면서도 아름답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다산 유적지의 정수다. 걸어서 30분 남짓인 길이지만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서로 어울려 짙은 향기를 뿜어댄다. 다산은 혜장선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이 길을 오갔다. 한여름 녹음이 뿜어내는 싱그러움과 뜨거운 햇살조차 부드럽게 감싸안는 오솔길에 들어서면 삿된 생각이 스르르 힘을 잃고 수풀 속으로 사라져 간다. 다산과 교유했던 혜장선사는 30세 젊은 나이에 대흥사 제12대 대강사를 지낼 만큼 학식과 수행력이 높고 컸다. 우연히 유배를 온 다산과 주역 논쟁을 벌이다 도저한 다산의 학문세계를 깊이 흠모하게 되고 이후 두 사람은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간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
“지역특징 제대로 살리는 상품 만들 터”

다산도 그와의 만남을 기꺼워했다. “삼경에 비가 내려 나뭇잎 때리더니/ 숲을 뚫고 횃불이 하나 왔다오/혜장과는 참으로 연분이 있는지/절간 문을 밤 깊도록 열어 놓았다네.”

다산의 시에는 혜장과의 인연에 얽힌 부분이 많다. 차를 좋아했던 다산이 혜장에게 차를 보내달라고 조르는 인간적인 면모까지 엿볼 수 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솔길을 오르내리며 학문을 주고받고 외로움을 나눴으며 진심으로 흠모했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처럼 길은 정겹다.

혜장이 머물렀던 백련사는 고려시대 귀족불교에 맞서 중창한 절이다. 일반 백성과 귀족 모두를 아우르는 신앙운동이었던 이때의 ‘백련결사’로 인해 백련사는 불교 개혁의 상징 같은 곳이다.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도 여기에 머물렀다.

“절이 대단히 담백하고 고졸하네요. 디자인적으로 봐도 조형미가 뛰어납니다. 디자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한국의 사찰은 다른 나라 절과는 다른 독특한 미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관광의 매력도’ 중 가장 낮은 단계가 바로 경관이나 유적지만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디지털 문화와 동양의 정신, 우리만의 문화 등을 잘 비벼내야 품격 높은 관광의 매력도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문화유산에서 디자인을 읽어내는 변 사장의 전문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백련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처님의 미소처럼 온기가 가득 피어 있다. 향긋한 차 내음 같은 목탁소리가 절 앞 동산까지 울린다. 합장하는 사람들의 손끝에는 정성 어린 기원이 가득하다.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변 사장의 기원과 다짐도 더해진다.

“이번 여행을 통해 강진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진처럼 지역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여행지를 선별해 특화시키고 제대로 된 관광상품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강진=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