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찌든 도시인 얘기 짧게 써봤죠"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이지만 때로는 한없이 외로움을 주는 장소가 도시다. 도시 사람들의 삶을 세련된 글솜씨로 풀어내 온 소설가 정이현 씨(사진)가 도시와 사람,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단편 소설보다 더 짧은 엽편(葉篇) 소설집 《말하자면 좋은 사람》(마음산책 펴냄)이다. 정씨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쓴, 콩트나 짧은 이야기로 불릴 만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원고지 20~30장 분량의 소설은 부담 없이 쉽게 읽히지만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견디다’에 나오는 그녀는 졸업 직전 이력서 12장을 쓴 끝에 방문 교육업체 교사로 취직한다. 사장은 150만원짜리 교재를 구입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을 바꾼다. 작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일을 할지, 열세 번째 이력서를 써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에 그녀는 혼자다. ‘이미자를 만나다’에 나오는 주인공은 초등학생 시절 따돌렸던 친구 이미자가 동창 커뮤니티의 중심이 된 것을 알고 당황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동창회에 나간 그는 이미 자리에 앉은 동창들 사이에서 빈자리를 찾을 수 없다.

"외로움 찌든 도시인 얘기 짧게 써봤죠"
정씨의 최근 작품은 경쾌한 이미지를 벗어나 차분하고 쓸쓸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약혼남과 떠난 여행에서 폭설 때문에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나(폭설), 엉덩이에 별 모양의 종기가 생겨 생업에 지장을 받는 택시기사 이야기(별)는 읽으면서 빙긋 웃음을 짓게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누군가의 조금 길고 쓸쓸한 일기장을 엿보는 느낌이다.

11편의 짧은 이야기는 정씨가 2002년 데뷔 이후 틈틈이 썼던 것들이다. 문예지나 온라인에 연재한 것도 있고, 기업의 사보에 기고한 작품도 있다. 정씨는 “외국에서는 단편이나 장편 외에도 엽편이 자주 발표되는데 국내에서도 보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최근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독자들이 많은 책을 읽으며 위로받기를 희망했다. “독자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200쪽, 1만2000원.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