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에 임명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13일 서울 명동성당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임명축하식에서 신도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에 임명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13일 서울 명동성당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임명축하식에서 신도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이 시대의 징표가 무엇이고, 어떻게 복음의 빛으로 밝혀야 할지를 끊임없이 찾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 지혜와 용기를 청합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13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에서 열린 추기경 임명 발표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염 추기경이 말한 ‘시대의 징표 읽기’는 교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찾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시대의 징표’는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찾기 위한 화두인 셈이다.

○양떼를 하나로 모으는 ‘착한 목자’

1995년 12월 서울대교구청 사무처장 겸 청담동성당 주임신부였던 염수정 추기경의 사제수품 25주년(은경축) 축하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축하해주고 있다. 한경DB
1995년 12월 서울대교구청 사무처장 겸 청담동성당 주임신부였던 염수정 추기경의 사제수품 25주년(은경축) 축하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축하해주고 있다. 한경DB
염 추기경은 이날 소감 발표를 통해 ‘착한 목자론’을 폈다. 성경 요한복음에 나오는 착한 목자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그들에게 생명이 넘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스스로 내놓는 존재다. 염 추기경은 “주님께서는 저를 착한 목자로 세우면서 양들을 사랑하도록 명하셨다”며 “착한 목자가 해야 할 첫 직무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양들을 모두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정신적·도덕적 위기에 봉착해 있으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하고 있으므로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얘기다. 모든 사람들의 화해와 일치 및 공존,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는 모든 인간의 연대감에 기초한 공동체 회복 등의 키워드가 여기서 나온다.

○사제의 정치참여는 반대

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원하는 교회상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라며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교회의 권위보다는 세상의 필요에 부응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널리 알려진 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과 교황님의 뜻에 순명해 추기경 임명을 받아들였다”는 염 추기경도 마찬가지다. 염 추기경은 이날 임명발표식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위한 교회’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지난해 성탄절 메시지에서도 염 추기경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며 “서로 나누고 사랑하며 섬기고 용서하며 살 때 구체적인 삶 속에서 성탄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그러나 사제들이 사회·정치적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참여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쪽이다. 지난해 11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사제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며, 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사제들이 개인적인 견해는 가질 수 있지만 이를 공표하면 사람들의 분열을 야기하거나 반목하게 할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하신 말씀”이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개인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탈하지만 치밀·꼼꼼한 성격

염 추기경은 이날 임명발표식에서 “여러분 무척 춥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 떨고 있는 취재진과 신자들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였다. 그러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황님의 뜻에 순명하겠다”며 “저만 빼고 많이들 즐거워하시는 걸 보니 많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더 두렵다”고 덧붙였다.

염 추기경을 옆에서 보좌해온 허 신부는 “소탈하고 겸손하면서도 800명 가까운 서울대교구 사제의 이름과 얼굴, 주요 경력을 두루 꿸 정도로 꼼꼼하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