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 첼리스트 정명화 "한국 클래식 성장은 어머니의 힘…이젠 기업이 적극 도와야"
사회=최명수 문화부장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에게 악기는 자신을 표현하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유명한 연주자들은 자신의 명성 못지 않은 악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이올린의 여제(女帝)’로 손꼽히는 안네 소피 무터는 2대의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을 사용한다. 1700년대 초반 만들어진 것으로 가격이 약 100억원에 이른다.

젊은 연주자들이 이처럼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악기를 보유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유망주로 꼽히는 연주자는 대부분 기업이 만든 문화재단의 후원을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국내에서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벽산문화재단 등이 젊은 연주자에게 악기를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재단은 과다니니, 과르네리 등 바이올린과 로카, 마치니 등 첼로를 20여점 갖고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등이 이를 빌려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다. 벽산문화재단도 세종솔로이스츠 단원을 비롯해 연주자들에게 고가의 악기를 빌려주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메세나(문화예술지원) 활동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세계적 첼리스트인 정명화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와 벽산문화재단을 만든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 한국 메세나 운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과 첼리스트 정명화 씨가 서울 팔판동 갤러리인에서 만나 클래식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과 첼리스트 정명화 씨가 서울 팔판동 갤러리인에서 만나 클래식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사회=두 분은 서로 잘 아시죠.

김희근 회장=정 교수님은 국민 모두가 아는 분 아닙니까. 저와는 같은 시대를 보내기도 했고요.(김 회장은 1946년 1월생, 정 교수는 1944년 3월생) 정 교수님의 부군(구삼열 전 국가브랜드위원장)과 제 형님(김희용 동양물산기업 회장)이 경기고 동기여서 평소에도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정명화 교수=대관령국제음악제를 통해 더 가까워졌지요. 이 음악제는 김 회장님이 주도적으로 만든 앙상블인 세종솔로이스츠와 함께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음악제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했고 8회(2011년)부터 동생 경화와 함께 공동 음악감독을 맡고 있고요.

▷사회=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김 회장=외국 생활을 30년 넘게 했습니다. 특히 직장에 입사한 뒤 10년 넘게 중동에 살았던 탓에 새로 나온 팝이나 가요는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대신 클래식 음악을 주로 들었죠. 건설 쪽 일을 오래 해서 성격이 급한 편인데 클래식 음악을 들으니 화도 누그러지고 차분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도 아이팟에 클래식 음악을 4600곡 정도 넣어놓고 틈 날 때마다 들어요. 클래식 음악도 좋지만 이런 음악을 하는 분들을 더 좋아합니다.

정 교수=어머니(故 이원숙 여사)가 어릴 때부터 저희 남매들에게 음악 교육을 시키셨어요. 그중 저와 경화, 명훈이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전공하게 됐고요. 처음에는 노래를 배웠고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쳤어요. 첼로는 11세 때 처음 배웠어요. 악기를 처음 잡자마자 제 목소리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경화는 바이올린 소리가 더 인간적이라고 하는데 저는 첼로가 그렇더라고요. 명훈이는 피아노로 화음을 만드는 걸 잘했어요. 각자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악기를 배운 거죠. 그러니 일생 동안 연주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사회=외국 생활이 힘들었을 텐데요.

정 교수=1960년대 초반에 미국을 갔는데 그때 한국의 이미지는 ‘고아가 많은 나라’였어요.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힘든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작은 연주회라도 기회가 있으면 자꾸 연주를 시키셨어요. 외국에 가서 보니 저보다 훨씬 실력 좋은 학생들이 많았지만 연주 경험은 제가 더 많다는 자신감으로 버텼죠. 어디서 연주하든 동포들이 와서 좋아해준 것도 힘이 됐고요.

▷사회= 메세나 활동중 어떤게 기억에 남습니까.

정 교수=한국 기업과 처음 연결된 것은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개교할 때였어요. 초대 음악원장을 맡은 이경숙 교수(현 연세대 명예교수)가 입학시험 심사위원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17세 이후 수십년 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부담이었죠. 그때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께서 아시아나항공을 언제든 탈 수 있게 해줄 테니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어요. 그 전까지는 제자를 가르쳐본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교육을 시작하게 됐어요. 7년 정도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왔다갔다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길러낸 학생들이 다시 여러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을 보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김 회장=저희는 참 혜택을 많이 받은 세대입니다. 일제시대가 끝나고 태어난 이후 사회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거든요. 하지만 압축 성장을 겪은 만큼 사회적 문제도 많은 것 같아요. 제 주위 사람들을 봐도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을 쏟을 뿐 삶의 의미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남들보다 혜택도 많이 받았고 교육도 많이 받았어요. 제가 받은 것을 돌려줄 수 있는 일이 메세나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예술 자체에는 문외한이지만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메세나 활동을 장려해야 하는데 정책적으로 묶인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김 회장=조직은 과거의 산물이고 규정도 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것입니다. 미래를 위한 조직이나 규정은 사실 모순이라고 봐야죠. 문화예술 지원에 짜증을 낸다면 기업인으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나 대한상공회의소 등을 통해 꾸준히 건의해 필요한 부분은 바꾸면 됩니다. 예술 지원을 한다고 회사가 망하지는 않아요. 성장이 조금 늦더라도 예술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봐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문화융성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2017년까지 정부가 문화재정을 2%로 높일 예정인데 이 돈이 잘 쓰여지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사회=클래식 음악 발전을 위해 뭐가 필요할까요.

김 회장=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를 보면 연주자 가운데 백발의 노인이 많아요. 반면 우리 오케스트라에는 젊은 여성의 비율이 더 높아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연주자들의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점도 커요. 제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경우 정부 소관 재단법인이고 예술의전당 상주 악단인데도 연봉은 2800만원밖에 안 돼요. 학생들을 따로 가르치는 것도 금지돼 있고요. 우리나라 클래식은 누가 뭐래도 어머니의 힘 덕분에 성장했어요. 여자 골프가 아버지의 힘으로 커온 것처럼 말이죠. 집안의 지원이 전부란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지원을 못받는 연주자들이 30대 후반만 되면 대학 교수로 가려고 해요.

정 교수=금호아시아나재단에서 외국 유명 연주자를 초청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여는데 입시에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대상 학생 연령을 14세 밑으로 낮췄어요. 사실 대가들의 연주에서 뭘 느끼기에는 어린 나이예요. 예술은 평준화라는 개념을 도입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대접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력을 평준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한 것은 맞아요.

▷사회=클래식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제도나 정책 가운데 아쉬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김 회장=외국에서도 다 신기하게 봐요. 미국이나 유럽이나 클래식을 듣고 보는 사람이 줄고 있는데 한국만 유독 클래식에 흥미를 갖는 젊은 사람이 늘고 있어요.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견기업은 중견기업대로 예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대신 정부가 매칭펀드(기업이 낸 금액만큼 정부가 지원하는 것)를 도입하거나 실질적인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적극적으로 권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 교수=광주비엔날레, 부산국제영화제처럼 클래식 음악도 세계적 수준의 행사가 필요해요. 한국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한국 연주자들이 세계에서 얼마나 많이 활약하고 있습니까. 한국에 세계적인 음악제가 생기면 해외 유명 연주자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령 이번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세계적 첼리스트 다비드 게링가스가 젊은 피아니스트 김다솔과 함께 연주했는데 내년에 같이 리사이틀을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고 해요. 하지만 10년 동안 자리를 잡은 대관령국제음악제도 매년 예산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정부나 대기업이 든든히 지원해 준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정리=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1946년 경남 진주 출생. 경기고와 미국 마이애미대를 졸업했다. 벽산그룹 창업자 고(故) 김인득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로 세계적 수준의 현악 앙상블로 평가받는 세종솔로이스츠 창단을 주도했고 2010년부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1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한국메세나협회에서 수여하는 ‘메세나인상’을 수상했다. 2010년 설립한 벽산문화재단을 통해 한국 예술가를 후원하고 있다.

첼리스트 정명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1944년 서울 출생. 1969년 세계 무대에 데뷔했고 1971년 제네바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부임해 후학 양성에도 열성적이다.

2011년부터 대관령국제음악제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동생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정명훈(지휘자·피아니스트)과 함께 ‘정트리오’를 구성,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