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경영상] '국민 메신저' 카톡의 신화…IT 세상을 바꾸다
2010년 3월 출시된 ‘카카오톡’(이하 카톡)은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카톡을 통해 공짜로 사람들과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건당 20원을 내야했던 이동통신사의 단문메시지(SMS)는 이제 ‘과거의 유물’ 신세가 됐다.

시장조사업체 오나보 인사이트에 따르면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의 카톡 이용률은 95%에 이른다. 전국민이 다 쓰는 ‘국민 메신저’란 얘기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에 관심이 없던 아줌마나 아저씨들이 카톡 때문에 스마트폰을 산다고도 한다. 다들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주고 받게 되면서 카톡이 없으면 모임에서 소외된다는 것이 이유다.

카톡은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흐름 역시 바꿔 놓았다. 세계 시장에는 2009년 개발된 ‘왓츠앱’을 비롯해 여러 모바일 메신저가 있었지만 카톡처럼 문자·음성통화·게임·쇼핑·패션 등이 한곳에서 이뤄지는 서비스는 없었다. 카톡은 세계 최초로 ‘모바일 소셜 플랫폼’이란 개념을 들고 나오면서 네이버(라인) 텐센트(위챗) 페이스북(페이스북메신저) 구글(행아웃) 등 후발주자들은 모두 카톡이 개척했던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카톡의 탄생 뒤에는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47)이 있다. NHN USA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2007년 그는 과감히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아이위랩(현 카카오)’이란 작은 벤처기업을 인수했다. 아이폰이 미국에서 출시되는 것을 보면서 ‘모바일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성공은 쉽게 오지 않았다. ‘부루닷컴’과 ‘위지아닷컴’이란 인터넷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다 2009년 한국에 아이폰이 정식 출시되면서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카카오톡이었다. 김 의장은 “스마트폰에서 가장 핵심이 무엇일까 고민해 봤을 때 답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며 “20명의 직원이 달라붙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개발했다”고 말했다.

사실 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첫 직장이었던 삼성SDS에 입사하면서 그는 “주변에 고수들이 너무 많아 남들과 똑같이 해선 승산이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이 코볼, 포트란으로 프로그램을 짤 때 그는 윈도에 집중했다. 덕분에 그는 삼성SDS가 국내 최초의 윈도 환경 PC통신인 ‘유니텔’을 개발하는 데 1등 공신이 됐고, 이후 회사 안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니텔이 PC통신 부동의 1위 ‘천리안’을 따라잡아가던 1998년,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게임’이란 게임회사를 차렸다.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게임을 하게 되는 시대’가 올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은 맞아들었고 회원 수를 폭발적으로 늘려가던 한게임은 2000년 포털업체 네이버와 합병해 NHN으로 거듭났다.

2010년 9월 100만명을 돌파한 카톡 가입자는 2011년 4월 1000만명으로 불어났고, 작년 6월엔 5000만명을 넘어섰다. 회원 수가 대한민국 인구인 5000만명에 이르렀지만 주변의 의구심은 갈수록 커졌다. 사용자 수는 많지만 모바일 메신저로 과연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겠느냐는 시선이었다.

그해 7월 말 선보인 ‘카카오 게임하기’는 이런 시선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계기가 됐다. 카톡 친구끼리 게임을 추천하게 하고, 친구와 점수 경쟁을 벌이도록 하면서 ‘카톡 게임 열풍’이 전국에 분 것이다. ‘애니팡’ ‘드래곤 플라이트’ 등 카톡에 입점한 게임들은 하루에도 수억원씩 매출을 올렸고 이 중 21%를 수수료로 떼어가는 카카오의 매출도 덩달아 급증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 70억원을 올려 첫 흑자를 낸 것도 카톡 게임의 공이 컸다는 분석이다.

김 의장은 “10년 전 한게임을 시작했을 때도 고스톱 게임으로 돈이 되겠냐는 질문이 많았다”며 “하지만 트래픽이 확보되면 자연히 돈이 따라온다는 것은 인터넷 시대의 법칙”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선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았지만 세계 무대에서 라인과 위챗 등 경쟁 서비스에 밀리고 있는 점은 카카오의 고민이다. 하지만 남이 생각지 못했던 발상으로 지금까지 돌파구를 마련해왔듯이 앞으로도 카카오만의 창의적인 방식을 살려나간다면 승산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 김범수 의장은 …
한게임 창업·NHN 대표 거쳐 아이위랩 인수 후 카톡 출시…벤처 육성 등 대외활동도 활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2남3녀 중 맏아들로,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를 포함해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아야 했던 가난한 집안이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돈을 버느라 바빴기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1년을 재수해 1986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들어갔다. 그때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으로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김정주 NXC 대표가 입학했고, 컴퓨터공학과 85학번에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이런 인연이 이어져 김정주·김택진 대표는 2011년 카카오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PC통신 관련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딴 뒤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1998년 사표를 쓰고 나와 ‘한게임’이란 게임회사를 세웠다. 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탓에 금방 자금난에 빠지게 된 그는 PC방이 뜨기도 전인 당시 한양대 앞에 국내 최대 규모의 PC방을 열었다. PC방 사업은 대성공을 거둬 한게임이 안정적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초석이 됐다.

2000년 한게임이 네이버와 합병하면서 이해진 의장과 NHN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4년 NHN 단독대표가 되면서 한국게임산업협회 초대회장과 벤처기업협회 부사장을 맡아 대외 활동으로도 폭을 넓혔다. 2007년 미국 시장 개척을 위해 NHN USA 대표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듬해 회사를 떠나 벤처기업 ‘아이위랩’(현 카카오)을 인수했다.

2011년엔 벤처캐피털인 케이큐브벤처스를 세워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한국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벤처 생태계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다. 여기서 ‘벤처 100개 키우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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