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기업금융의 진화…IB까지 챙긴다
#1. 우리은행 임교택 기업지점장은 지난해 10월 거래사인 관광·레저업체 라미드그룹(옛 썬앤문)이 부채상환을 위해 3000만달러 정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임 지점장은 곧바로 본사 IB(투자은행)본부에 정보를 전달했다. 이후 IB본부가 직접 라미드와 접촉, 해외 네트워크를 풀가동해 싼 자금조달 솔루션을 찾아냈다. 우리은행이 직접 보증을 서 홍콩에서 낮은 금리로 달러표시 채권 발행을 발행한 것이다.

#2. 국민은행 최종근 광화문역지점장은 지난해 6월 주거래회사 관계자와 식사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교보생명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본사에 연락했고 IB사업부는 당시 유력한 인수후보자였던 캐나다 온타리오 교직원연금(OTPP)에 인수자금 지원을 제안했다. 결국 캠코는 교보생명 지분 9.9%, 4680억5000만원(주당 23만원)을 OTPP에 매각했다. 국민은행은 OTPP의 인수금융 신디케이션론(차관단) 주관사로 선정돼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저금리로 수익악화에 시달리는 시중은행들이 CIB(corporate&investment banking) 영업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CIB는 정식 용어는 아니지만 일반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을 합친 개념으로, 기업금융과 IB업무를 연계하는 업무를 일컫는다. 보통 은행 내부의 기업금융 관련 부서나 증권 등 계열사들의 IB조직을 연계해 통합 운영하는 방식으로 도입한다. CIB 부서는 그간 쌓아온 기업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수·합병(M&A),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영업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기업·지역별 담당 지점장들이 CIB 영업의 첨병이다. 남들보다 먼저 M&A, 채권발행, PF 등 기업들의 경영계획을 입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성공에 자극받은 은행들은 잇따라 CIB 조직을 신설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조직개편에서 기업금융과 IB부서를 통합해 CIB본부를 신설했다. 하나은행도 올 들어 기업부문과 IB부문 간 연계영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종전 자금시장그룹 내에 있던 자금운용본부를 기업영업그룹 소속으로 바꿔 기업영업추진본부와 함께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2011년 말 CIB 조직을 가동한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 CIB를 통해 다룬 자금만 5조4000억원 수준이다. 신한은행이 신디케이션론 주관사로 다룬 대출과 신한금융투자가 주관사로 발행한 회사채 등의 규모를 합한 수치로 2011년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국내 CIB 분야 선두주자인 산업은행은 시중은행들의 추격에 맞서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CIB벨트를 구축 중이다. 홍콩 법인의 경우 유럽계 금융기관 업무 공백을 이용해 CIB 업무를 특화시키고 있다. 싱가포르에선 사회간접자본(SOC)·자원개발 PF업무를 확대하고 있다. 산은은 특히 PF 분야에서 지난해 62억달러 규모의 금융 주선 실적을 올려 국내 금융기관으로는 처음 세계 6위에 올랐다.

신한FSB연구소 임병철 소장은 “은행들의 새로운 수익원 찾기와 기업들의 높아진 재무적 요구로 인해 CIB가 새로운 분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KB금융경영연구소는 비슷한 사업모델로 성장에 한계를 보이는 한국의 은행들이 CIB 모델을 잘 발전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신영/장창민/김일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