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하트(1765~1815)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산 여인도 드물다. 그는 원래 대장장이의 딸로 태어나 천방지축 시장바닥을 놀이터로 삼으며 자란 무지렁였다. 처녀 때는 런던 코벤트가든의 한 극장에 들어가 여배우의 시중을 들었으며, 한때 돌팔이 의사의 호객꾼 노릇도 했다.

그는 우연히 귀족 남성들 파티의 접대부로 일한 게 계기가 돼 여러 귀족의 정부가 됐고, 26세 때는 환갑을 맞은 나폴리 왕국 주재 영국대사인 윌리엄 해밀턴 경의 사모님이 된다. 그는 ‘애티튜드’라는 마임극을 개발, 유럽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한 재능꾼이기도 했다. 28세 때 만난 넬슨 제독과는 뜨거운 사랑을 불태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패한 후 세상을 떠나자 빚더미와 가난 속에서 술에 의지,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초상화의 대가 조지 롬니가 그린 이 그림은 엠마가 한창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던 시절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바커스를 쫓아다니며 술을 마시며 난동을 일삼았다는 여인의 모습으로 분장한 엠마의 자태가 자못 유혹적이다. 이 그림이 엠마의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화(豫知畵)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