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타우섬 새 비즈니스 허브로
지난 16일 오전 11시 홍콩 카우룽반도 북서쪽 사이쿵(西貢) 지역의 팍탐충공원. 운동복이나 간편복 차림의 남녀노소 1200여명이 도로 위 출발선에 섰다. 간단한 개회식에 이어 출발 신호가 울리자 참가자들은 함성과 함께 앞으로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날 행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홍콩에서 열리는 세계적 자선행사인 ‘옥스팜 트레일워커(Oxfam Trailwalker) 2012’. 4명이 한 팀을 이뤄 홍콩의 대표적 하이킹 코스인 맥클리호스 트레일의 100㎞ 구간을 48시간 내에 완주하는 대회로, 행사를 통해 자선기금을 마련해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
이날 행사에는 홍콩 중국 한국 일본 등 100여개국에서 1200개팀 480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 수가 많다보니 한꺼번에 출발하지 않고 오전 9시부터 네 차례에 걸쳐 출발했다. 대회 참가자 외에 이들에게 음식과 음료 등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지원팀까지 더하면 대회 참가자는 1만명을 넘어선다.
◆기금 마련에 마이스(MICE) 유치까지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스포츠를 통한 자선기금 마련 행사다. 대회 참가자들은 팀별로 1200홍콩달러(약 17만원)를 등록비로 내야 하고 최소 6800홍콩달러(약 96만원)를 기부해야 한다. 이를 통해 행사를 주관하는 옥스팜은 지난해 2700만홍콩달러를 모금했고 올해 예상 모금액은 3000만홍콩달러. 행사를 처음 치른 1986년부터 대회 참가자는 총 7만3000여명, 모금총액은 3억6000만달러에 이른다.
특히 사회적 책임을 위해 참가하는 기업이 많은데 기업 단위로 참가하려면 기업당 20명 이상의 단체를 구성해야 한다. 20명 가운데 100㎞를 걸을 4명의 트레일워커와 이들을 지원할 16명의 지원팀으로 역할을 나눠 참가하게 된다. 올해 대회에는 산업용 기계 등의 모션제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무그(MOOG) 등 여러 업체가 기업단위로 참가했다.
이 때문에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자선행사인 동시에 기업회의·포상여행·국제회의·전시 등을 망라하는 마이스(MICE) 관광객을 유치하는 기회로 활용된다. 홍콩관광청은 옥스팜 행사 참가자에게 각종 할인 쿠폰과 기념품, 가이드북을 나눠주는 것은 물론 공항 에스코트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공항·호텔·선박에도 마이스 시설
인구 700만명의 홍콩은 관광대국이다. 지난 1~9월 외래관광객이 3500만명을 넘었다. 중국 본토에서 온 2500만명을 빼더라도 1000만명을 넘고, 연말까지 외래관광객은 440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 때문에 홍콩섬과 카우룽반도의 도심은 항상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좁은 도시에 관광객이 넘치다보니 불편도 많다.
홍콩관광청이 마이스를 관광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홍콩의 마이스 여행객은 105만여명. 해마다 2.9%씩 증가하고 있는 마이스를 활성화하려는 홍콩의 공세는 전방위적이다.
지난 14일 첵납콕국제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으려 하자 직원 명찰을 단 한 여성이 다가와 “코스모프로프 박람회에 참가하러 왔습니까?”라고 물었다. 코스모프로프박람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장품박람회다. 박람회 참가자에게는 입국 수속은 물론 짐을 찾고 전시장으로 찾아가는 것까지 도와준다. 공항 에스코트 서비스다. 첵납콕공항의 ‘공항 세계무역센터클럽’에는 비즈니스 출장자를 위한 접대, 회의 시설을 갖추고 있고 홍콩 시내 주요 호텔들은 마이스 담당자까지 두고 있다.
◆마이스 수요 겨냥한 란타우섬 개발
홍콩에서 가장 큰 외곽 섬인 란타우섬은 첵납콕국제공항이 있는 곳. 도심에서 자동차로 25분이면 닿는 곳이지만 도심과 달리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과 다양한 매력을 자랑한다. 홍콩은 이 란타우섬을 마이스 관광지 겸 새로운 비즈니스 허브로 개발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공항 내 세계무역센터와 플라자 프리미엄 라운지는 물론 외국인 거주지였던 디스커버리베이에 골프클럽과 디즈니랜드, 20여개 테마레스토랑을 갖춘 디데크 등을 갖추고 있다. 디스커버리베이 앞바다에 떠 있는 18세기 유럽 범선 ‘더 바운티’호에선 60명이 동시에 파티를 즐기거나 해적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해발 400m의 산간에 조성한 테마빌리지 ‘옹핑 360’, 핑크돌고래 관찰 투어, 역사를 따라가는 하이킹, 소림 쿵후교실 등 마이스 여행객을 위한 팀빌딩 및 체험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공항부터 행사장, 호텔, 식당까지 전방위적 ‘마이스 마인드’로 무장한 홍콩의 사례는 우리도 새겨둬야 할 이야기다.
홍콩=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