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한경 에이셀 epci AI

[씨줄과 날줄] 삼국통일 초석 놓은 신진세력들

"김춘추·김유신 천하재편 꿈키워
사익 버리고 솔선수범으로 지도
신망받는 리더십 지금은 어디에"

김정산 < 소설가 jsan1019@naver.com >
신라가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것은 무열왕 김춘추를 임금으로 추대하면서부터다. 선왕인 진덕여왕에게 후사가 없어서 임금을 새로 뽑아야 했으니 그 사정은 오늘날 대통령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기 654년 춘삼월, 신라 정치인들은 차기 임금을 뽑는 화백(和白)을 연다. 최종 경쟁자는 단 두 사람, 알천(閼川)과 김춘추로 논의가 압축된다. 알천은 원로, 김춘추는 신예. 알천을 지지하는 세력은 많고 김춘추 편은 처남인 김유신뿐이다.

그런데 알천은 스스로 왕위를 양보한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진덕왕이 돌아가시자 군신들은 알천에게 섭정을 청하였는데 알천이 극구 사양했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이미 늙었다. 덕행도 내세울 게 없다. 지금 덕망이 높기로 춘추공만한 이가 없고, 그는 실로 세상을 다스릴 큰 영걸이라 할 만하다” 하고 임금으로 받들었다. 춘추가 세 번 사양하다가 부득이 왕위에 올랐다.》

알천은 당대 최고 권력자였고 김춘추와 김유신은 속칭 ‘떠오르는 해’였다. 역사의 명암은 흔히 이런 대목에서 갈린다. 김춘추와 김유신으로 대변되는 ‘신예’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행동파였다. 모두가 보수적인 원교근공(遠交近攻)의 틀에 갇혀 있을 때 수백년 구도를 과감하게 깨고 ‘통일’이란 신개념을 수립해 천하를 재편할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고구려로, 당나라로, 왜로, 원근(遠近)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만인이 통일을 비웃었지만 김춘추는 외교를, 김유신은 군사를 맡아 안팎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열정을 쏟았다. 신예들이 제시한 새로운 아젠다와 거대한 패러다임에 알천의 보수파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통일의 싹은 이렇게 민족사에 잉태됐다.

통일전쟁이 한창일 때 김유신은 싸움터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출전하라는 왕명을 받는다. 집에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이 당도해 있었다. 잠시 집에 들러 위독한 아버지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으랴. 그러나 김유신은 자신의 집 대문 앞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50보쯤 지나친 곳에 이르러 시중 드는 사람에게 집의 장물(간장)을 떠오게 하여 맛을 본 후 “우리 집 장맛이 변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구나” 하며 안도했다고 한다. 집안에 흉사가 있으면 장맛이 변한다는 속설은 그때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자식으로서, 또한 만인을 통솔하는 장군으로서 이보다 더 애틋함이 묻어나는 일화가 또 있을까. 쉴 틈도 없이 전장으로 나가던 군사들의 불만은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이런 솔선수범을 바탕으로 필승의 김유신 군대가 있어 지금도 하지 못하는 그 어려운 통일을 이뤄낼 수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평소 집에 6억원이나 되는 현금을 쌓아두고 산다는 이가 대통령의 친형이라고 한다. 그 돈을 대통령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가 집을 사려고 큰아버지에게 가서 빌려왔단다. 그럴 수도 있다. 세상에 그럴 수 없는 일이 있으랴. 그런데 다른 건 다 그만두고 그 집안에서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면 그런 집안 사람이 나라를 이끌고 국민을 통솔할 꿈은 버려야 한다. 적법과 불법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얼마나 부자인지, 그 돈이 무슨 돈인지 따위와도 무관하다. 나라를 이끄는 통솔력은 돈이나 법에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이란 신조어의 주인공인 또 다른 형은 이미 구속돼 있고 새로운 비리도 계속 터져 나온다. 그 전의 대통령도, 또 그 전의 대통령들도, 대한민국 역사 60년에 거의 모든 집권자가 대부분 비슷한 연유로 국민의 여망을 배신하고 추락해갔다. 참으로 불행하고 불행한 시대다. 출신과 배경, 정당과 얼굴 생김새는 다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천하의 신망을 짓밟고 물욕 때문에 국민을 배신했다는 사실이다.

차기 대통령을 뽑는 유세판 열기가 뜨겁다. 배우만 바뀌었지 5년 전에 보던 모습 그대로다. 일신과 가문의 영달을 뛰어넘어 진실로 겨레의 번영과 통일의 초석을 놓을 자 누구인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다시금 간절히 기다려본다.

김정산 < 소설가 jsan1019@naver.com >
  1. 1
  2. 2
  3. 3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1. 1
  2. 2
  3. 3
  4. 4
  5. 5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