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다 (5·끝)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길은 있다
가계부채 6월말 1121조원, 작년보다 18조원 증가 '사상 최대'
집 가진 빈곤층 '하우스푸어' 작년 180만 가구…1년만에 20% 늘어
채무자는 허리띠 졸라매고 정부는 생계형 대출자 대책 세워야
박씨는 ‘승부수’를 띄웠다. 신용불량자로 8년을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하루에 2~3시간만 자면서 매월 500만원 이상 버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낮에는 새로 얻은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 새벽에는 건물 청소, 우유와 신문배달, 아파트 세차일로 이어지는 생활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기적처럼 원금 5000만원을 갚을 수 있었다. 그는 “신복위로부터 상환 축하 메시지를 받는 순간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쳐 한 시간 동안 펑펑 울었다”며 “사형수(신용불량자)로 있다가 특별 사면을 받아 석방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부채로 신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려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 상태다. 박씨처럼 극적으로 부채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어나는 부채 원리금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자영업자 포함) 부채는 6월 말 1121조원에 달했다. 작년 말보다 18조원 증가해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가계부채가 어느 정도 많아질 수 있고 소득이 계속 늘어난다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0년 158.0%로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일본 호주 등 주요 7개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식 통계가 나오기 전이지만 한국은 지난해 가계부채가 제자리걸음을 했던 영국을 제치고 이들 국가 중 1위로 올라섰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부채 축소에 나섰지만 한국은 오히려 반대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집을 가진 빈곤층, 이른바 ‘하우스푸어’도 늘고 있다. 2006년 1억6000만원의 대출을 받아 서울 삼선동 재개발지역 빌라에 투자한 이중범 씨(37)는 지난해부터 원금분할 상환에 들어가 한 달 소득(370만원)의 40% 정도인 152만원을 내고 있다. 이씨는 “재개발이 무산되면서 3.3㎡당 680만원하던 집값이 요즘은 400만원 아래로 떨어졌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다”면서 “은행 이자보다는 더 벌 줄 알았는데…”라며 가슴을 쳤다. 이씨 같은 하우스푸어는 2010년 150만가구에서 지난해 180만가구로 30만가구(20.2%)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가계부채의 질마저 나빠지고 있다. 50세 이상 고연령층의 가계부채 비중은 2007년 39.4%에서 지난해 46.4%로 높아졌다. 신규 대출 중 연소득 3000만원 미만 저소득층 비중도 36.7%로 1년 전보다 6.9%포인트 뛰었다. 고연령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가계 살림살이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난 건 부동산 불패 신화만 믿은 채 너 나 할 것 없이 대출을 받아 부동산시장에 뛰어든 결과다. 은행들도 대출 경쟁에 뛰어들며 빚을 키운 측면이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융회사들이 돈벌이에 급급해 차주의 상환 능력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을 늘렸다”고 지적했다.
부채의 덫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을까. 이론적으로는 간단하다. 소득을 늘려 조금씩 갚아나가면 된다. 하지만 소득이 정체되거나 줄어든다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나 금융회사들도 대출자 몫이라고 뒷짐지고 있을 순 없다. 금융당국은 이를 방조한 책임이 있고 금융회사들은 마구잡이로 여신을 늘렸기 때문이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정부는 생계형 대출자에 대해서는 채무 재조정을 고려해야 한다. 하우스푸어는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해 집을 처분한 뒤 갚을 수 있도록 하고 모자란 돈은 장기 상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