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자 씨 "실은 삶의 궤적… 아픈 상처 꿰매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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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미국 무대 누비는 영상·설치작가 김수자 씨
보따리와 이불보로 만든 설치작품과 이불 보따리를 트럭에 가득 싣고 떠도는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 작업 등으로 ‘보따리 작가’란 별칭을 얻은 설치미술가 김수자 씨(55). 29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김씨는 “바늘과 실은 마치 서로 다른 전통과 문화, 지역을 직물과 같이 꿰매는 것처럼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통합하는 미학적 에너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공부한 김씨는 1980년대 판화 작업을 거쳐 1983년 바늘로 꿰매는 행위에서 영감을 얻은 뒤로 천과 바느질을 이용한 콜라주 드로잉 채색 작업에 열중했다.
캔버스 물감 붓으로 대변되는 서양화의 한계를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확립한 김씨는 1997년 보따리를 싸서 트럭에 싣고 유년시절에 살았던 전국 마을과 도시를 돌며 행한 퍼포먼스 비디오 작품 ‘보따리 트럭-2727㎞’로 화제를 모았다. 2005년 11월에는 미국 타임스스퀘어 광장에서 28명의 모델들을 동원, 앉아서 구걸하는 ‘거지 여인’ 퍼포먼스를 벌여 뉴요커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회고전 형식으로 오는 10월10일까지 펼쳐지는 이번 전시회 주제는 ‘숨쉬기’. 세계 곳곳 직물 문화의 풍경에 실의 미학적 에너지를 드라마틱하게 편집한 16㎜ 다큐멘터리 작품 ‘실의 궤적’을 비롯해 비디오 설치 작품 ‘뭄바이-빨래터’ ‘숨쉬기-보이지 않는 거울/보이지 않는 바늘’ 등 7점을 내보인다.
총 6부작 중 2부만 완성해 서울 관람객에게 먼저 선보인 ‘실의 궤적’은 바느질, 직조, 또는 레이스 짜기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인간 역사와 자연이 하나로 숨쉬는 거대한 생명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김씨는 자연이 숨쉬는 모습을 디지털 색면 추상의 시각적 호흡과 연계시킨 작업도 들고 나왔다. 영상 작품 ‘숨쉬기-보이지 않는 거울/보이지 않는 바늘’은 2006년 베니스 라 페니체극장의 텅빈 공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관객의 숨소리를 회화적 양식으로 묘사했다. 노예 무역이라는 인류의 야만적 치부의 상흔이 남아 있는 나이지리아의 알파비치를 촬영한 2001년작 비디오 작품 ‘보따리-알파 비치’도 눈길을 끈다. 맑고 투명한 하늘과 불안정한 파도의 대비는 삶을 속박당한 채 자국에서 강제 추방돼 노예로 팔려간 원주민들이 느꼈을 방향의 상실을 대변한다.
김씨는 보따리 바늘 실 등의 소재를 영상 작업에 활용하는 것에 대해 “예술과 삶을 연계하고자 하기 위해서”라며 “이주, 피난, 전쟁, 문화적 충돌, 서로 다른 정체성 등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 현대인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예술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02)3210-988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