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를 초과한 주택보유자의 대출에 대해 은행들로 하여금 신용대출이나 장기 분할상환 대출로 바꿔주도록 했다고 한다. 집값 하락으로 LTV 수치가 크게 높아진 점을 고려해 대출받은 사람이 한도 초과분을 갚지 않아도 만기연장을 받을 수 있게 길을 터준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겠다는 의지가 읽혀지지만 원칙은 자꾸 무너진다.

주택담보대출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연체율이 작년 말 0.61%에서 지난 5월 0.85%로 급등해 있다. 올 들어 5월까지 만기를 연장한 대출 가운데 1만5000건은 이미 LTV를 초과했다. LTV 한도를 초과한 대출은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 282조원의 15%인 44조원(3월 말 기준)이나 된다. 현재 평균 LTV는 48.5%로 서울 등 수도권 한도 50%(지방은 60%)에 바짝 근접해 있다. 대출자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집이 있지만 대출이자를 내기 힘든 소위 하우스푸어 문제도 그렇고,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지 못한다는 깡통주택, 깡통상가도 속출한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얼마나 큰 충격이 있을지 예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렇지만 모든 가격이 그렇듯이 집값도 예측불허요, 금융은 자기책임이다. 언제나 수억원의 대출을 받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어떤 결과든 스스로 안고갈 수밖에 없는 것은 주식투자와 똑같다. 아무리 집값 하락으로 피해가 커도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정부가 개입할수록 금융 원칙은 무너진다. 지금까지 규칙을 지킨 사람만 바보가 된다. 대우사태 당시 환매 원칙을 깬 것이나 저축은행 예금 보호한도를 둘러싼 논란들도 원칙을 깼다. 이런 일이 또 반복되는 것이다.

상환능력을 따져 대출을 통제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LTV 원칙은 한번 무너지면 계속 무너진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사람만 바보가 되고 만다. 대출받은 사람의 딱한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버블이여 영원하라!’고 부르짖을 수는 없지 않나.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 누구도 금융의 원칙을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