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초현실주의 미학의 거장이다. 20대 초반 벨기에 왕립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빠져들었던 자동기술법이나 꿈의 세계에 대한 편집광적 탐구에서 벗어나, 현실의 신비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했다.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을 통해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한 것이다.

마그리트 작품에 매료된 마르셀 브로타에스(1924~1976)는 언어와 미술 표현에 관한 일반적인 가설들에 의문을 품고 이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1972년 서로 상관없는 오브제들을 한데 묶음으로써 미술이 어떻게 역사적, 기능적, 지리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지 보여주며 20세기 서양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마그리트의 미학에 영향을 받은 브로타에스를 비롯 파나마렌코(72), 프란시스 알리스(53), 호노레 도(51), 조엘 투엘링스(53) 등 벨기에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가 내달 12일까지 이들 5명의 작품 30여점을 전시하는 ‘원더러스트(Wanderlust·방랑벽)-또 다른 언덕 너머로 가는 끊임없는 여정’전이다.

한스 마리아 드 울프 브뤼셀 자유대학 교수와 이번 전시회를 공동기획한 김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독일어권에서 ‘원더러스트’는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내면의 열망을 말한다”며 “예술가의 간단한 상상력을 통해 현재 겪는 사회적 억압과 부조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여행의 필요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들은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 낯선 세계로 향하는 현대인의 꿈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브로타에스의 1974년 설치작업 ‘겨울 정원’. 야자나무 화분 25개, 야외용 의자, 백과사전에 실린 다양한 새 그림으로 실내 정원을 꾸미고 영화와 우울한 음악을 들려준다. 현실과 이상을 중개하는 예술가의 어려운 처지를 은유적으로 다룬 것. 조엘 투엘링스 작품 역시 돌과 새를 오브제로 활용해 인간의 꿈과 환경의 묘한 조화를 묘사한 게 흥미롭다.

프란시스 알리스는 ‘여행이야말로 생각의 새 지평’이란 메시지를 담은 영상작업을 들고 왔다. 호노레 도의 장대한 설치작품 ‘진주 목걸이’도 이채롭다. 플라스틱 판자로 만든 보행로를 서울 정릉천과 성북천에 설치한 작품이다. 물 위에 설치된 보행로는 흐르는 강 저편에 도달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압축적으로 풀어냈다.

‘팬 아메리카 항공사’를 뜻하는 예명을 가진 파나마렌코는 비행기와 로봇 등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만든 흥미로운 기계 장치, 도안, 설계도를 내놓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예술가이면서 과학자적 혜안도 갖추고 있는 그는 지난 40여년간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비범한 발명품이 됐을 뻔한 다양한 기계 장치들을 고안했다.

전시장에는 이들 작가 이외에도 마르셀 뒤샹(1887~1968)과 보에티(1940~1994)의 작품, 괴테, 스턴, 클레브니코프 등에 관한 문서도 함께 전시된다. 어른 3000원, 학생 1500원. (02)733-894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