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대규모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엊그제 같은데 얼마 전 또 다시 4개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가 취해졌다. 감독당국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과감하게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당국은 저축은행 경영진의 대출 비리에 대한 수사와 이와 연관된 감독부실의 책임을 밝히는 데도 한창이다.

저축은행 사태는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사실 소유·지배구조의 불투명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 본질은 외환위기 이후의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발판으로 저축은행 업계 자산이 급격히 확대되는 과정에서 저축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는 소홀히 한 채 본연의 서민금융보다 고위험 부동산 관련 대출에 집중하고, 이를 서민금융의 잣대로 바라본 당국의 감독이 자연스레 부실해진 데 기인한다.

하지만 뼈아픈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통해 우리 금융시장이 전보다 더욱 성숙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신속한 조치를 통해 저축은행에 대한 시장 불안 요인이 상당 부분 제거됐으며 이를 반영한 듯 당초 우려했던 예금인출 사태 등 혼란은 실제 발생하지 않았다. 그간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등의 지속적인 예금자보호제도 홍보 및 지난해의 학습효과 등으로 예금자들의 의식과 수준이 많이 향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의 중요성이 재삼 강조되고 그 기능이 향상됐다는 점도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감독당국이 인적·조직적으로 전면 쇄신하고 예금보험공사와 합동으로 부실 저축은행들을 과감히 정리한 것은 우리 금융감독 역사상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된다.

돌이켜보면 저축은행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 겪은 것이 아니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도 우리 이상의 위기를 겪었었고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성공적인 모습으로 변화했다. 일본 제2지방은행의 경우 전후(戰後) 대표적인 서민금융회사인 무진회사(無盡會社)가 전환된 것으로 연혁 등 여러 면에서 한국의 저축은행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버블 경제의 후유증으로 위기 상황에 직면한 이후 철저히 지역 중소기업 위주의 지역밀착 관계형 금융(relationship banking)에 치중하면서 성공한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 주택 관련 서민금융회사인 미국 저축대부조합(S&Ls)의 경우 1980년대 후반 커다란 위기 상황에 직면했으나, 역시 강도 높은 구조조정 이후 유동화 등으로 대출 위험을 줄이면서 금융위기에도 양호한 건전성과 높은 수익성을 지속하는 지역 주민의 모기지 금융회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2010년 말 기준 업계 1~5위 대형사를 포함해 모두 20개 저축은행이 퇴출됐다. 이제 하드웨어적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거의 마무리된 듯하며, 남은 것은 정책당국과 저축은행 업계가 본연의 서민금융회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저축은행의 경쟁력 제고에 힘을 모으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 같이 제조업 기반이 강한 국내 경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중소기업을 위한 자금 공급처가 미흡하고, 서민생활이 팍팍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금융이 매우 취약한 상황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은행에 비해 업무영역 범위가 제한된 상황에서 저축은행이 서민금융 관련 수익모델을 찾지 못할 경우 본연의 서민금융 역할 수행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금융당국과 저축은행 중앙회는 저축은행의 장점을 활용한 지역밀착 서비스 및 틈새시장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또한 저축은행의 영업력과 건전성 제고를 위해 저축은행 임직원의 금융지식 향상과 윤리성 함양 등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고진감래라고 이제 저축은행도 국민들의 질타에서 벗어나 머지않아 지역사회의 사랑을 받는 우량 금융회사의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을 기대해본다.

박덕배 <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