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호주의 보험회사들은 최대 호황을 누렸다. 국내총생산 대비 수입보험료를 뜻하는 보험침투율이 최고 6%를 넘었다. 하지만 저축성 상품의 실수익률이 형편없이 떨어지면서 계약자가 이탈하기 시작했다. 최근 보험침투율은 1980년대 초·중반 수준인 3% 선으로 내려앉았다. 현지 보험산업은 순수 보장성 상품 위주로 완전히 재편됐다.

변액 보험 수익률 논란이 확산되면서 국내 보험업계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의 신뢰를 되찾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자칫 호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란 경고도 없지 않다. 전문가들은 실수익률이 낮은 요인으로 초기에 사업비가 집중된 상품의 특성을 꼽고 있다. 그런 만큼 수수료 지급 체계를 분급형, 후취형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험계약 60%, 1년 후 설계사 바뀐다

우리나라 저축성 보험의 사업비 중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이 판매수수료다. 판매수수료는 선취 방식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투자 원금이 작아지고 초기 환급률이 낮아지는 단점이 있다.

보험연구원이 작년 4월 저축성 상품에 대한 수수료 지급 현황을 조사한 결과 수수료 총액 중 초년도 비중이 최고 98.5%에 달했다. 계약자들이 가입 초기에 대부분의 수수료를 낸다는 얘기다.

이경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수료를 먼저 떼는 체계이다보니 변액연금만 놓고 볼 때 계약 후 5~6개월까지의 환급액은 제로에 가깝다”며 “소비자 민원과 보험산업에 대한 불신의 주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에게 수당을 먼저 지급하면 설계사가 보험계약을 유지·관리하기보다 새로운 계약을 따내는 데 치중하게 된다. 또 고액 수수료를 좇아 회사를 옮겨다니는 현상도 되풀이된다. 우리나라의 보험설계사 정착률(상품계약 후 13회차 기준)은 2008년 기준 39%로, 미국(67%)이나 캐나다(85%)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보험 가입자의 60% 이상이 계약 1년 후엔 다른 설계사로부터 관리를 받거나 아예 담당자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보험수수료, 분급·후취형 도입해야

해외에서는 보험상품의 수수료를 △선취 △분급(전체 납입기간으로 분산) △후취 방식으로 다양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AIA생명 관계자는 “외국에선 저축성 보험의 수수료 지급방식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고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급·후취형의 경우 보험 계약자가 가입 초기에 해지하더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훨씬 많다. 정세창 홍익대 금융공학과 교수는 “보험사 간 경쟁 격화가 선취수수료 지급 관행이 정착된 배경”이라며 “수수료를 초기에 집중적으로 내는 구조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의 수수료체계 변경 지침에 따라 이달부터 계약 첫해에 판매수수료의 최고 70%를 받고, 나머지 납입기간 중 분산해 떼는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선취수수료 집중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창수 숭실대 보험수리학과 교수는 “보험이 본질적으로 소비자에게 가입을 권유해야 하는 상품이다보니 보험사들도 판매채널의 수당 선지급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며 “때문에 감독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금상품엔 사업비 제한” 의견도

일각에선 보험사 연금상품에 한해 정부가 사업비 상한선을 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국민연금 제도가 취약한 상황에서 개인연금의 사회보장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한발 더 나아가 공적 성격의 개인연금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라는 주장도 있다.

김재현 상명대 금융보험학부 교수는 “영국에선 민간의 연금상품 수익률이 저조하자 올해부터 별도 기구를 만들어 특별 관리하고 있다”며 “공적 개인연금을 맡을 민간 업체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선정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업비 절감을 유도할 수 있고 계약자 입장에선 최저 수수료를 내게 된다”고 소개했다.

변액연금에 대한 손실보전 등 실제 수익률을 높일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미국에선 1990년대 최저 수익률을 보장하는 변액연금이 나오면서 침체했던 시장이 활성화됐다”며 “혁신적인 상품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때”라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