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공장 완전 침수
임직원 스스로 새벽 출근
온몸 던져 필사적 복구
김승호 회장 "너무 감격"
79년부터 직접 생일 챙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
“카나브! 카나브! 카나브!”
지난 6일 저녁 서울 대학로의 한 대형 호프집 2층. 보령제약 임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인 테이블에서 1분이 멀다하고 이런 건배사가 울려 퍼졌다. 이날 모임은 1979년 1월부터 33년4개월 동안 매월 계속돼 온 생일자 직원 파티모임. 김승호 보령그룹 회장(80)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챙기는 이 모임이 이날로 꼭 400회를 맞았다. 이 자리에서 보령제약 임직원들은 목청을 돋워 자사 첫 신약인 카나브(고혈압 치료제)의 성공을 건배사로 기원했다.
앞서 임직원들과 함께 영화관람을 마친 김 회장은 호프집에 들어서자마자 주변 임직원들에게 생맥주를 따라줬다. 맥주가 몇 순배 돌자 김 회장의 지시로 소주와 맥주를 섞은 혼합주가 돌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나이를 의심케 하는 ‘주당(酒黨)’으로 제약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해방 후 1957년 보령약국, 1963년 보령제약을 창업한 이후 50여년간 회사를 경영해 온 제약업계의 ‘산 증인’이다.
행사장에는 김 회장과 그의 장녀인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을 비롯해 김광호 보령제약 대표(전문 경영인) 등 임직원 160여명이 참석했다. 이준희 보령제약 이사는 “생일을 맞은 직원들을 챙기는 행사는 종종 있지만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400개월을 내리 이어온 행사는 국내에서 전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는 1977년 7월7일 경기 안양 지역에 내린 폭우에서 비롯됐다. 공장이 완전히 침수돼 제품 생산설비가 모두 못 쓰게 된 절체절명의 상황. 넋을 놓고 있던 김 회장은 다음날 아침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당시 전 임직원 220여명이 나와 엉망이 된 설비와 제품을 옮기며 필사적으로 복구작업을 펼쳤기 때문이다. 공장은 4개월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고, 덕분에 그해 매출은 오히려 전년보다 늘었다.
김 회장은 “주변에서 모두 기적이라고 불렀다”며 “직원들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을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생일파티였다”고 말했다. 1979년 1월 시작된 생일 조찬회에서는 그달 생일을 맞은 모든 직원에게 미역국을 대접하고 간단한 선물을 전달했다. 2003년 12월 300회 생일잔치 때부터는 저녁으로 시간대가 옮겨졌고, 2006년 11월부터는 콘서트, 영화관람 등 문화행사를 더했다. 김 회장은 “출장 일정까지 바꿔가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리베이트 단속에 이어 약가 인하 등 계속되는 제약업계의 시련에 대해 김 회장은 “당장은 어렵겠지만 국내 제약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방향은 맞는 것”이라며 “어차피 넘어야 할 산, 해답은 독창적 신약뿐”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요즘 ‘국산 15호 신약’ 카나브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3월 발매된 이 약이 10개월 만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성공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말 멕시코 등 중남미 13개국에 2013년부터 7년간 3000만달러, 터키 알제리 카자흐스탄에 2014년부터 5년간 4500만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으며 최근에는 중국과 미국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국내 최초의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회장 등과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호프집에서는 ‘카나브’ 건배사, 경품추첨 등으로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박웅석 보령수앤수 차장은 “애사심이 높아지고 업무와 관련해서도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자리”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