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손은 더 이상 ‘품질에 비해 저렴한 브랜드’가 아닙니다. 디자인이나 성능에서 경쟁 브랜드에 비해 뒤질 게 없는데 굳이 ‘가격 메리트’를 내세울 이유가 있겠습니까. 지금보다 더 고급 브랜드로 격상시켜 티쏘, 세이코는 물론 론진과도 ‘맞짱’ 뜰 겁니다.”

토종 시계 브랜드 로만손이 ‘브랜드 업그레이드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고급 브랜드에 주로 장착되는 오토매틱 기계식 무브먼트(배터리 없이 손목에 차면 팔의 움직임에 따라 동력을 얻는 방식)를 탑재한 모델을 선보이며 ‘엔트리급 명품시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가격도 150만원 안팎으로, 기존 로만손 중저가 제품과 비교하면 5배 이상 높다.

김기석 로만손 사장(51·사진)은 3일 “지난해 처음 선보인 고가 제품(프리미엄 라인의 ‘아트락스’ 모델)의 성공에 힘입어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장착한 아트락스 2호 모델을 개발했다”며 “앞으로 저가 모델을 축소하고 중·고가 위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바꿔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사장이 로만손을 고급 브랜드로 탈바꿈시키기로 결정한 데는 아트락스 1호 모델에 대한 호평이 발판이 됐다. 쿼츠 무브먼트(배터리로 움직이는 동력장치)가 탑재된 이 시계는 독거미를 형상화한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향상된 품질 덕분에 출시와 함께 ‘완판’(완전 판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세 번째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

그는 “업계에선 ‘100만원짜리 로만손 시계를 누가 사겠느냐’고 했지만 디자인과 성능을 뜯어본 소비자들은 주저없이 아트락스를 선택했다”며 “이제는 로만손 이름으로 150만원짜리 시계, 오토매틱 시계를 내놓아도 팔릴 것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세를 몰아 고급 라인을 한층 더 강화하기로 했다”며 “아트락스 컬렉션 산하에 신모델을 추가하는 동시에 새로운 고급 컬렉션을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로만손 업그레이드’의 일등 공신으로 디자인 개선을 꼽았다. 판매업체와 바이어들이 원하는 스타일로 디자인하던 것에서 벗어나 로만손이 주도권을 갖고 그림을 그렸더니 훨씬 독창적이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나왔다는 것이다. 유통 채널을 바꾼 것도 한몫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저가 시계를 주로 판매하는 ‘시계방’을 떠나 백화점 중심으로 판매망을 바꾼 게 주효했다는 것. 로만손은 롯데 노원점 등 주요 백화점에 시계 편집매장 ‘더 와치스’를 열고 로만손 시계는 물론 로만손이 수입·판매하는 에독스, 알펙스 등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김 사장의 목표는 로만손을 ‘한국 대표 시계 브랜드’가 아닌 ‘세계가 인정하는 중·고가 시계 브랜드’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K팝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까지 달굴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모두 ‘한국 주얼리는 안 된다’고 했지만 로만손은 ‘J.에스티나’로 국내에서 스와로브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한 데 이어 미국 뉴욕 한복판(플라자호텔 1층)에도 진출했습니다. 시계라고 못할 것 있나요. 더 좋은 디자인, 더 뛰어난 품질의 시계를 만들면 명품 시계 나라인 스위스의 높은 벽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