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셔츠를 입은 ‘선데이 터미네이터’가 돌아왔다.”

타이거 우즈(37·미국)가 기나긴 슬럼프 터널을 마침내 통과했다. 2009년 9월 BMW챔피언십 우승 이후 무려 923일 만에 아널드파머인비테이셔널(총상금 600만달러)에서 자신의 72번째 미국 PGA투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불륜 스캔들로 인한 이혼에 이어 무릎과 아킬레스건 부상까지 겹쳐 부진에 허덕이던 우즈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단번에 일축하며 부활 샷을 쏘아올렸다.

우즈는 26일(한국시간)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베이힐CC(파72·7381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버디 4개, 보기 2개로 2언더파 70타를 쳐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로 2위 그레임 맥도웰(북아일랜드)을 5타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는 7승째이며, 우승상금으로 108만달러를 받았다. 한 대회에서 7승을 거둔 것은 월드골프챔피언십 시리즈 브리지스톤인비테이셔널에 이어 두 번째다.

우즈가 5타차로 우승한 것은 16번째다. 지난해 US오픈에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8타차 우승을 거둔 이래 최다 타수차 우승 기록이다. 우즈는 이번 우승으로 월드랭킹이 18위에서 6위로 뛰어오르며 2011년 5월22일 이후 처음으로 ‘톱10’에 복귀했다.

타수차가 워낙 벌어져서인지 우승이 확정된 순간 우즈는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8명만 출전한 이벤트대회 ‘셰브론월드챌린지’ 우승보다도 더 무덤덤하게 승리를 맛봤다. 5타차로 앞서가던 18번홀(파4) 182야드 지점에서 8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샷을 그린에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환한 웃음을 보였다. 10m 버디퍼트를 2퍼트로 마무리한 우즈는 ‘타이거! 타이거!’를 연호하는 팬들을 향해 모자를 벗어 답례하는 것으로 30개월 만의 우승을 자축했다.

대회 코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즈는 이날 ‘지키는 골프’를 했다. 우즈는 2번홀(파3) 12m 거리에서 3퍼트로 보기를 한 뒤 3번홀(파4)에서 1m, 4번홀(파5)에서 4.5m 버디를 추가했다. 6번홀(파5)에서는 3번 아이언으로 267야드를 날려 ‘2온’한 뒤 가볍게 버디를 더했고 8번홀(파4)에서는 해저드를 넘겨 1.8m 버디를 노획했다.

우즈는 동반플레이를 펼친 맥도웰에게 단 한 차례도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완벽한 우승을 일궈냈다. 단독선두로 40차례 최종라운드에 돌입해 38승2패로 95%의 우승 확률을 이어갔다. 공동선두까지 포함하면 53전 49승 4패다.

우즈는 “메이저대회 같은 큰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기 종료 후 3시간 뒤에는 “집으로 가면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지역 팬들과 사랑으로 지켜본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 어니(아널드 파머의 애칭)의 회복을 빈다”라는 트위트를 날렸다.

대회 호스트인 아널드 파머(82)는 혈압이 높아져 대회 종료 15분 전에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로 인해 우즈는 파머가 직접 주는 우승컵을 받지 못했다.

한편 19년 만에 마스터스 초청을 받지 못한 어니 엘스(남아공)는 다음주 셸휴스턴오픈에서 마지막 기회를 노린다. 엘스는 이날 공동 4위에 그치며 세계랭킹을 58위로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 다음주 랭킹 50위 이내에 진입해야 마스터스에 나갈 수 있다.

케빈 나(29)는 합계 5언더파 283타로 공동 4위에 올라 한국(계)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노승열(21)이 합계 2언더파로 공동 20위를 기록했고 1, 2라운드 선두를 달렸던 위창수(40)는 합계 이븐파로 공동 29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은퇴한 캐디 앤디 프로저(60)를 다시 불러 대회에 임한 최경주(42)는 합계 2오버파에 그쳐 공동 36위를 했다. 앤서니 김(27)은 13번홀(파4)에서 볼을 두 차례 물에 빠뜨려 ‘더블파’를 기록하는 등 11오버파 83타로 무너지며 합계 10오버파로 공동 66위에 그쳤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