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 지경부 장관 "한·미 FTA 폐기는 모든 FTA 포기하자는 것"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국내 산업정책 전반과 에너지산업을 총괄하는 경제부처의 수장이다. 그는 지난해 11월17일 취임한 직후 무역 1조달러 달성이라는 경사를 맞긴 했지만 겨울철 전력대란 우려와 이란제재 논란, 고유가 지속,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 등으로 어려움도 많았다. 홍 장관은 지난 24일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 집무실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현안 전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산업 전반을 책임지는 주무장관으로서 출자총액제한 제도(출총제)부활, 재벌세 도입 추진 등 최근 정치권에서 쏟아낸 ‘대기업 때리기’ 정책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홍 장관은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세가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막는 경제적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권에서 출총제 부활 논란이 일고 있다.

“2009년 폐지 당시와 비교해 경제여건상 큰 변화가 없음에도 일부에서 면밀한 분석없이 부활을 주장하고 있어 아쉽게 생각한다. 최근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기업의 투자활동을 위축시키는 출총제 논의는 부적절하다. 대기업의 경제 집중력 완화를 위한 방법으로는 출총제 대신 공시 강화, 불공정거래 규제, 지주회사 규율 등이 있다.”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을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데.

“일감몰아주기나 골목상권 진출 등 일부 대기업들의 잘못된 행태에서 비롯된 문제다. 그러한 잘못된 행태는 분명 시정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대기업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식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여론몰이를 통해 기업들을 비난하고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반(反)대기업 정서 확산은 결국 중소기업의 판로와 서민 일자리 창출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법제화 추진이 필요하다고 보나.

“정치권이 주장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는 2006년 폐지된 고유업종제도를 사실상 부활하겠다는 것이다. 산업경쟁력 약화 등 부작용을 답습할 우려가 크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법제화보다는 민간자율 및 사회합의 시스템이 바람직하다. 작년 말 합의사항 불이행에 대한 벌칙 부과 등 보완책을 마련한 만큼 기존 제도를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또 적합업종 선정이 중소기업의 중견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품목에 따라서는 적합업종 적용대상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한정하는 등 상황별로 탄력 적용해 성장가능성 높은 중견기업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류세 인하에 대해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두바이유 기준)를 넘으면 발동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원칙을 따르겠다고 말한 재정부 장관과 같은 입장이다. 다만 130달러 이전이라도 서민 경제에 심각할 정도의 타격이 이뤄지면 관계 부처와 원유수입 관세를 포함한 유류세 인하를 진지하게 논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름값은 단순히 세금인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급자인 정유사들의 사회적 책임도 필요한 때다.”

▶정유사의 사회적 책임은 작년과 같은 일시적인 가격인하를 뜻하는가.

“꼭 그런 해결책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정유사들이 국내 시장이 아닌 수출에서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기업이 혼자 잘해서 그런 결과가 나온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유사는 민간기업이지만 한전이나 가스공사처럼 국가 인프라 성격이 큰 산업이다. 이런 인프라를 갖추는 데 국가가 많은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정유사들이 스스로 지금처럼 어려울 때 가격 상승폭과 인상 시기를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재정위기 확산으로 유럽시장이 맥을 못 추면서 미국 시장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무역 1조달러를 사수하는 데도 미국시장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미 FTA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유럽연합(EU), 아세안, 칠레 등과 맺은 FTA를 다 버려야 한다는 얘기나 같다. 야당은 자동차 분야의 재협상으로 이익균형이 깨졌다고 주장하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도 미국과의 FTA를 환영하고 있다. 무슨 근거로 재재협상이나 폐기를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야당의 폐기 주장은 국가의 미래보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겨냥한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매우 우려된다. 이제는 FTA 활용 확대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며 효과로 보여주도록 하겠다.”

▶기업 투자활성화 종합 대책은 언제쯤 나오나.

“당초 3월 중 발표로 예정했지만 4월로 넘어갈 것 같다. 기업투자 제도가 여러 부처에 퍼져 있어 서로 협의할 내용이 많다. 발표를 서둘러 설익은 자료를 내놓는 것보다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게 낫다고 본다.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각종 기업투자 규제를 한곳에 모아보고 그 규제의 존재 여부가 적절한지 하나씩 따져볼 것이다.”

▶중견기업 육성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중견기업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강소기업이다. 중소기업들의 꿈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중소기업들과 함께 중견기업들이 받쳐줘야만 국가의 산업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순간 사라지는 갖가지 혜택들 때문에 중소기업에 머무르려는 기업들도 있는 게 현실이다. 4~5월 내놓을 중견기업 종합 육성대책은 중견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과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이에 맞춰 지경부 내에 중견기업을 전담할 국(局)을 신설할 계획이다. 중견기업 육성의 틀을 잡은 장관으로 기억되고 싶다.”

▶중소기업청의 부(部)승격에 찬성하나.

“지경부의 업무 대부분이 중소기업을 위한 것들이다. 정책지원, 신성장동력 등 산업 전반에 대한 업무를 폭넓게 다루다보니 이름을 지경부로 달았을 뿐이지 엄밀히 말하면 중소기업부나 다름없다. 현장 창구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청과 지경부는 상호 보완적인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생각하는 게 맞다. 현재로서 중소기업부 승격 필요성은 없다고 본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