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안개가 짙은들 / 나태주
안개가 짙은들

나태주


안개가 짙은들 산까지 지울 수야

어둠이 깊은들 오는 아침까지 막을 수야

안개와 어둠 속을 꿰뚫는 물소리, 새소리,

비바람 설친들 피는 꽃까지 막을 수야.


‘우수(雨水) 한파’에 웅크렸던 땅이 살짝 기지개를 켭니다. 눈이 녹아서 비가 되고 그 빗물이 스며 새싹을 틔우는 절기. ‘우수 뒤에 얼음같이’ 이제 추위가 풀리고 겨우내 우리를 가렸던 ‘짙은 안개’와 ‘깊은 어둠’도 걷힐 것입니다. 그러면 연초록 앞산이 아침처럼 밝아오겠지요. 땅과 하늘을 봄빛으로 깨우는 저 물소리와 새소리의 웅얼거림. 아무리 ‘비바람 설친들 피는 꽃까지 막을 수야’ 있겠습니까.

[이 아침의 시] 안개가 짙은들 / 나태주
우수 이후 첫 5일간은 얼음 풀린 강에서 수달(水獺)이 물고기를 잡고, 다음 5일간은 기러기가 북방 찬 하늘로 날아가며, 마지막 5일간은 풀과 나무에 연한 싹이 튼다고 했습니다. 우리 몸도 곧 따뜻한 실핏줄 사이로 연둣빛 순을 밀어올리겠지요. 알큰한 그 향기를 따순 봄, 정겨운 사람이 먼저 알고 저만치 손 내밀며 환하게 웃습니다.

고두현 문화부장·시인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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