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이 기획하는 해외 K팝 공연이 한창 불이 붙은 K팝 열풍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가치는 물론이고, 기획사 단독 공연의 티켓 파워도 떨어뜨리고 있다.”(A기획사 대표)

“방송사의 해외 콘서트 일정을 피해 자체 기획공연 일정을 짜야 한다. 방송사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후환이 두려워 거절할 수 없다.”(B기획사 임원)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해외 K팝 공연을 기획하는 것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방송사들이 K팝 가수들을 줄 세우고 있어서다. 특히 KBS와 MBC는 공영방송임에도 돈벌이에만 급급해 부작용을 자초하고 있다.

KBS ‘뮤직뱅크’가 지난달 진행한 파리 공연이 대표적인 사례다. 공연은 당초 2회로 예정됐지만 티켓이 팔리지 않아 1회로 축소됐다. 졸속으로 기획한 데다, 홍보 마케팅도 충분히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란 게 현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소녀시대 2PM 비스트 포미닛 티아라 유키스 등 당시 무대에 섰던 가수들은 단독 공연을 해도 충분한 정상급 아티스트들이다.

KBS는 ‘월드투어’란 이름으로 오는 5월과 9월에도 해외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KBS는 K팝 월드투어를 본격화하기 위해 최근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기도 했다. MBC는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6월 영국 런던, 9월 브라질 상파울루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SBS는 이달 중 미국 등지에서 공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CJ E&M도 이 경쟁에 가세했다. 이달 초 로스앤젤레스(LA)에서 FT아일랜드, 씨앤블루 등의 K팝 무대를 꾸미는 등 연내 수차례 공연할 계획이다. CJ E&M측은 "방송과 상관없이 순수한 공연사업으로 중소기획사와 함께 전개하는 것"이라며 "지상파 3사와의 K팝 공연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들 4개 방송사의 전체 공연 횟수는 연말까지 10회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상파 3사는 지난해 해외에서 총 9회 K팝 공연을 했다. KBS는 도쿄 뉴욕 베이징에서, MBC는 방콕 도쿄 니가타 시드니에서, SBS는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각각 공연했다.

문제는 정상급 아티스트들을 한 무대에 세움으로써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소녀시대는 지난해 단독 콘서트로 2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현재 일본 투어를 하고 있는 동방신기는 55만명을 모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가수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게 되면 단독 공연의 티켓 파워가 줄 수밖에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방송사와 기획사 간의 공연 일정이 너무 근접해 있는 것도 문제다. 비스트와 포미닛은 지난해 8월20일 MBC의 니가타 공연에 출연하고 5일 뒤 도쿄에서 유나이티드큐브 무대에 섰다. 2PM은 MBC의 니가타 공연 이틀 전 사이타마에서 JYP 콘서트에 출연했다.

또 방송사에서 기획한 공연은 기획사 무대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획사들은 음향과 조명, 디자인 등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반면 방송사들은 공연 품질 관련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

게다가 지상파 3사는 공연 수익금의 거의 전부를 가져간다. 아티스트들에게는 현지 숙식비와 교통비, 약간의 출연료만 지불하는 게 보통이다. 출연료도 그동안의 방송 출연료 단가를 적용해 낮게 산정하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출연료 불만이 고조된 최근 들어서야 해외 초청 개런티의 70~80% 선으로 출연료를 인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BS는 기획사와 협의도 없이 티셔츠와 배지 등 MD상품을 판매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방송사들이 매달 해외에서 K팝 공연을 해 K팝시장에 왜곡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K팝 공연에는 공짜표까지 돌고 있다. 팬들이 K팝 공연을 식상해 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방송사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K팝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한류가 확산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일본이 아니라 인도나 우즈베키스탄 등 한류 미개척지에서 콘서트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