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간·조림 등 국토개발 주도
베트남 파병으로 얻은 KIST…기술강국 도약에 결정적 역할
◆군인의 땀방울로 경제부흥 토대 갖춰
1950~1960년대 군은 싸우면서 건설했다. 무엇보다 1965년 베트남전 파병은 자주안보의 기반 확립과 경제 도약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1973년까지 8년의 참전 기간 동안 파병 장병의 해외 근무수당 2억3556만달러 가운데 80%가 넘는 1억9511만달러가 국내로 송금됐다. 함께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군수물자 납품과 용역, 건설을 통해 돈을 벌었다. 기업의 파월 기술자들이 국내에 보낸 돈은 6억9420만달러로 당시 외화 획득 금액의 80%를 차지했다.
그렇게 모은 자금과 베트남 사업에서 쌓은 기술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발전소와 중화학공장 등 국가 기간시설을 짓는 밑거름이 됐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군은 공병부대와 장비를 투입, 험준한 산악지대와 ‘달이내고개’ ‘몽단이고개’ 등 난공사 건설을 주도해 완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군과 민이 경제 성장을 위해 한마음으로 뛴 결과 파병 직전인 1964년 103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974년 5배가 넘는 541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기술강국 기틀 만들고 국토 개발 앞장
기술강국으로의 성장에도 군은 공헌했다. 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베트남 파병의 성과물이었다.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 방미 때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파병에 대한 보답으로 국군 현대화와 경제 원조를 약속했고 그 핵심 중 하나가 KIST 설립 지원이었다. 이 연구소는 1960년대 변변한 공산품 하나 만들지 못했던 한국을 오늘날 정보기술(IT) 반도체 자동차 조선 대국으로 키운 기초 핵심 기술을 개발했다.
군은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먹거리 걱정도 덜어줬다. 1954년부터 1972년까지 병력 37만3544명, 장비 2만여대를 투입해 교실 4790동을 신축했다. 식량 증산을 위한 개간사업에는 1961년부터 1975년까지 13만4439명의 군인이 투입돼 2151㏊에 달하는 농경지 정리사업을 수행했다. 국토 녹화와 홍수 피해 예방을 위해 여의도 면적의 2565배에 달하는 218만㏊ 넓이의 산지에 조림공사도 진행했다.
백재옥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군의 희생이 정부 예산 절감, 지역경제 발전, 주민 편익 증진 등의 효과를 가져와 우리나라가 신흥개발국 및 개발도상국의 ‘개발 교과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