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2040세대의 저항…'위로' 넘어선 비전의 정치 나와야
'꿈'을 잃은 2040세대의 저항…'위로' 넘어선 비전의 정치 나와야
10 · 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후보가 당선됐다.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정치세력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정치패러다임의 근본 변화를 시사한다.

한국경제신문은 27일 김용호 인하대 교수(정치학),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상무(경제학 박사) 등과 함께 이번 선거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짚어봤다. 전문가들은 "무소속 박 후보의 당선은 기존 정치가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이번 선거결과가 정당정치의 위기로 이어질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사회=박원순 범야권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를 내린다면.

▲김 교수=불확실성이 많은 시대입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지도자가 없을까 하는 바람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철수 바람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이 반영됐다고 생각합니다. 유권자들에게 여의도는 권력싸움을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미국 대선 후보도 요즘은 워싱턴(국회)출신 중에서는 잘 안 나옵니다. 주지사들이 나오죠.초선 상원의원 출신으로'워싱턴'색채가 엷었던 오바마 대통령도 워싱턴을 바꾸겠다고 한 것이 선거에서 크게 어필했었습니다.

▲한 상무=세 가지 측면으로 선거 결과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세대 간의 갈등입니다. 50대를 전후로 지지율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둘째,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갈등입니다. 온라인 중에서도 모바일 쪽이 두드러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도권 대 비제도권의 대립입니다. 제도권의 행태가 싫었던 거죠.민주당에 대한 실망감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민주당은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두 번 치르면서 대중적 지지를 받던 이계안 씨가 아니라 당파적인 득실을 따져 강금실,한명숙 씨를 후보로 냈었습니다.

▲강 교수=좀 더 근본적으로 본다면 '꿈을 잃은 세대의 저항'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유권자들은 생활이 어렵고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박 후보가 되면 꿈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 것 같습니다. 더불어 한국사회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의 위기라는 평가도 가능합니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전문가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기존 정치권이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시켰죠.그러다보니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저만큼은 하겠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전반적으로 지도 계층에 대한 신뢰성 상실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안철수 교수 같은 사람이 주목받게 되는 거죠.

▲김 교수=우리나라 선거의 변수는 지역 · 세대 · 이념인데 이번엔 세대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20대에게 정치는 하고 싶은 얘기 하고 듣고 그런 것입니다. 얘기하는 공간의 개념이죠.과거 정치처럼 투쟁이 아닌 놀이로 이해합니다.

▲강 교수=소통이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든 4대강이든,사실관계를 떠나 국민들은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박 후보에 대해서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번엔 한나라당도 소통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야권을 모방하는 수준이었죠.앞으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국민과의 소통이 강조될 겁니다.

▲사회=시민사회 운동이라는 제3정치세력의 등장이 기존 정당정치 질서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 교수=오세훈 전 시장 때 시민이 뽑은 시장과 의회가 무상급식에 대해 결론을 못 냈죠.결국 서울시민이 직접 결정을 해 줬고 그 결과 보궐선거가 성립됐습니다. 서울시민 입장에서는 대표를 뽑아놓은 이유가 없어졌던거죠.정당 · 대의민주주의를 살리려면 여야가 정치개혁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선거법 · 정당법 · 정치자금법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YS · DJ 시대의'보스정치'문제점을 없애기 위해 도입된 정치관련법 구조가 중앙당의 힘을 약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정당이 구심점이 되지 못합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친이 · 친박이 싸우고 있고 민주당은 리더십이 약해졌습니다.

▲강 교수=선거 결과가 박원순 · 안철수 '바람'인지 '마그마'인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람은 실체가 없고 마그마는 실체가 있는 거죠.처음 이들이 부각됐을 땐 바람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선거 결과로 표출되면서 실체가 있는 흐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선거 결과만으로 예단할 순 없지만,만약 실체가 있는 흐름이라면 기존 정당의 정치방식을 바꿔야 할 겁니다.

▲김 교수=전 바람이라고 봅니다. 1987년 정당정치가 자리잡은 후 수차례 비슷한 운동이 있었는데 뿌리내린 적이 없습니다. 노사모나 낙천 · 낙선운동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현실정치를 바꾸지 못했죠.이번에도 지역정당 체제를 바꿀 정도까지는 되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한 상무=정당정치의 위기로 봅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 국가 수도의 장을 뽑는 선거에서 무소속이 당선된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민주당의 행태는 이를 부채질했다고 봅니다. 당 밖의 후보와 당 내 후보 중에서 인기투표로 서울시장 후보를 뽑았죠.이런식이라면 당이 왜 존재하냐는 의문이 듭니다. 민주당은 자기후보를 낼 수 없는 당이 돼 버렸죠.

▲사회=이번 선거결과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제3정당 창당 가능성은 있을까요.

▲김 교수
=선거 결과를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번 선거로 안 교수에게 정치적 기회가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3당을 만들어 임팩트를 가져 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역정당이 생각보다 생존력이 강합니다. 1987년 이래 제3정당은 한번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그나마 성공사례지만 결국 실패하고 지역정당에 흡수됐습니다. 또 소선거구제 하에서 제3정당이 살아남긴 어렵습니다. 박 후보가 이른 시일 내에 업적을 내지 않으면 서울시민도 빠르게 실망할 겁니다. 요즘 유권자는 참을성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강 교수=최근 한국경제의 흐름을 보면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락하는 경제 성장률,소득분배 악화,커지는 변동성이 그것입니다. 셋 다 국민을 힘들고 불안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민주당은 무상복지,박원순 · 안철수는 '위로'라는 대안을 내놨습니다. 한나라당은 아무것도 안 내놨죠.그래서 이런 선거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위로 그 다음'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걸 내놓지 못하면 이번 선거에서 나온 지지율은 허망하게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사회=무소속 시민단체 출신 서울시장 하에서의 시정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시장의 과제는.

▲김 교수
=서울시장이 복지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민에게 전달되는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요. 또 관료들의 반대를 뚫고 복지를 늘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박 후보가 노련한 서울시 관료들을 잘 관리할지도 의문입니다. 시정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한 상무=복지를 하더라도 현실적인 복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뉴타운 지역을 넓게 잡아 용적률을 300% 정도로 올리고,그 중 250%는 뉴타운으로 조성하고 나머지 50%는 임대주택을 만들어 신혼부부나 노인들에게 저가로 제공한다든지,혹은 초등학교의 남아도는 교실에 무상 보육시설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무리하게 일자리 · 빈부격차 해결에 나서려고 지나치게 복지를 확대하면 서울시가 망가집니다. 서울시민이 실험대상이 돼선 안 됩니다.

▲강 교수=박 후보는 과거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자리에서 중재하거나 조정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갈등 속에서 한쪽 편만 들어왔죠.서울시장이 돼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면 상당한 갈등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정치는 한 개인이 아닌 집단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 후보의 측근 그룹들은 대중들에게 노출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서울시정에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정리=남윤선/강경민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