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패전이 독일의 양대 名車를 탄생시키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때 두 자동차 회사의 화려한 역사가 시작됐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이자 세계 최고의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 중인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얘기다. 최고 품격을 내세우며 고급차 시장을 주도한 메르세데스 벤츠와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럭셔리 스포츠 세단의 입지를 굳힌 BMW.서로 추구하는 성격은 달랐지만 '세계 최고를 지향한다'는 목표는 같았다.

◆칼 벤츠,세계 첫 가솔린차를 만들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칼 벤츠(Karl Friedrich Benz)와 고틀립 다임러(Gottlieb Wilhelm Daimler)의 자동차 개발 경쟁 속에서 탄생했다. 1886년 독일의 기계 기술자이자 자동차 발명가인 벤츠는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카를 개발했다. 바퀴 세 개의 이 자동차는 최고 속도가 시속 16㎞에 불과했지만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106㎞의 장거리 주행에 성공해 화제가 됐다.

벤츠는 이어 1894년 첫 번째 상용차인 벨로(Velo)를 출시했다. 실린더가 하나뿐인 가솔린 엔진의 4륜 차량이었다. 벨로는 당시 1200대나 판매됐고 벤츠는 자동차가 값비싼 장난감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마차보다 실용적인 교통수단임을 증명했다.

칼 벤츠보다 열 살 위인 고틀립 다임러는 1883년 가솔린 엔진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1886년엔 최초의 가솔린 4륜차 모터 캐리지를 개발했다. 이후 1890년 다임러 모터 컴퍼니를 설립한 그는 1900년부터 출시한 자동차 다임러 대신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메르세데스는 다임러 모터 컴퍼니의 오스트리아 판매 대리인이자 레이싱 드라이버였던 에밀 옐리네크(Emil Jellinek)의 딸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여기엔 사연이 있다. 옐리네크는 1900년 다임러 본사에 '나는 애벌레가 아닌 나비를 원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보다 빠르고 기술적으로 진보된 자동차 개발을 주문했다. 이에 다임러 컴퍼니의 수석 설계사이자 천재 디자이너인 빌헬름 마이바흐(Wihelm Maybach)는 저중심 설계에 압축 프레임,가볍고 강력한 엔진,벌집 모양의 라디에이터를 갖춘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차에 감동받은 옐리네크는 자신의 딸 이름인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메르세데스는 스페인어로 우아함을 뜻한다. 메르세데스는 '위크 오브 나이스'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모든 부문을 석권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전설이 된 벤츠 '실버 애로'

칼 벤츠와 고틀립 다임러가 개발한 차들은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경쟁하면서 뛰어난 기술력을 과시했다. 당시 대표적인 레이스가 1908년 프랑스 그랑프리 대회로,이곳에서 메르세데스 레이싱카는 1위와 5위,벤츠 레이싱카는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두 회사를 위기에 몰아넣었고,이들 회사는 공존을 위해 합병을 추진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렇게 1926년 출범했다. 그리고 8년 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금은 전설이 된 자동차를 내놓는다. 1934년 에펠 그랑프리에 출전하기 위해 제작한 경주용차인 W-25다. 직렬 8기통 3360㏄짜리 엔진,최고 출력 354마력,최고 속도 시속 300㎞의 성능을 지닌 이 모델은 그러나 하마터면 경기에 나서지 못할 뻔했다. 대회 규정 무게인 750㎏을 2㎏ 초과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고심 끝에 차량을 덮고 있던 흰색 페인트를 벗겨냈다. 결국 2㎏ 감량에 성공했고 레이스에서 우승했다. 은빛 알루미늄 차체가 쏜살같이 달리는 모습에서 W-25는 '실버 애로(은빛 화살)'라는 애칭을 얻었다. 그리고 은빛 컬러는 메르세데스 벤츠를 상징하는 색상이 됐다.

20년 뒤인 1954년 메르세데스 벤츠는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300SL'을 내놓으며 또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경주용 차의 성능을 승용차에 그대로 담은 300SL은 최고 속도 시속 250㎞로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일반 승용차였다. 300SL은 출시 후 3년 동안 1400대가 생산됐고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70%가 운행될 만큼 세계 스포츠카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다.
1차대전 패전이 독일의 양대 名車를 탄생시키다
◆경쟁자 BMW…항공기에서 자동차로

BMW는 원래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회사였으나 모터사이클과 자동차 분야로 눈을 돌리면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강력한 경쟁자로 빠르게 부상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BMW는 항공기 엔진 회사를 운영하던 구스타프 오토(Gustav Otto)와 칼 라크,마츠 프리츠가 합작해 바이에른 모터 제작회사를 설립하며 등장했다. 구스타프 오토는 내연기관을 처음 발명한 니콜라우스 오토의 아들로 1차대전 패전국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항공기 엔진을 포함한 무기류를 3년간 만들 수 없게 되자 모터사이클로 사업을 옮겼고 위기는 기회가 됐다.

모터사이클에서 명성을 쌓은 BMW는 1928년 자동차 산업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1933년 첫 모델인 3/20PS를 시작으로 BMW 최초로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은 303모델을 통해 BMW 3시리즈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1936년 BMW의 정체성을 확립한 모델로 평가받는 328을 내놓는다.

328은 비행기 디자인을 응용한 유선형 차체 디자인으로 나올 때부터 화제가 됐다. 130여개 레이스의 우승을 휩쓸며 엔진 등 동력기술을 인정받았다. 1938년 1000마일(1600㎞)을 달리는 밀레밀리아 경주에서 평균 시속 166㎞로 우승했고 다음해 르망 24시간 경주에서도 1등을 차지했다.

상승세를 탄 BMW는 순식간에 메르세데스 벤츠의 아성을 넘보는 명차 대열에 오른다. 자신감이 붙은 BMW는 1950년대 미국 스포츠카 시장을 장악한 벤츠 300SL에 맞설 최초의 경쟁 모델 507을 발표한다. 배기량 3168㏄짜리 8기통 엔진에 최고 출력 150마력,최고 속도 시속 200㎞ 성능을 갖춘 507은 'BMW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불릴 만큼 과감한 디자인을 채택한 2인승 스포츠카다. 상어 아가미를 닮은 차량 옆면의 에어벤트(통풍구)는 지금도 M시리즈에 적용될 만큼 BMW의 상징이 됐다.

507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유명 인사들의 애장품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1만달러가 넘는 높은 가격 문제로 상업적으로는 미국 시장에서 완패했다. 야심작이 실패하면서 BMW는 경쟁사인 메르세데스 벤츠에 합병될 위기에까지 처했다.

주주들의 거부와 직원들의 반대로 합병당할 위기를 넘긴 BMW는 1973년을 전후한 석유파동 때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됐다. 소비자들은 경제적인 소형차를 원했고,BMW는 때마침 3시리즈를 내놓았다. 3시리즈는 BMW 전체 판매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효자 모델로 자리잡았다.

◆성공의 상징…벤츠와 BMW

1차대전 패전이 독일의 양대 名車를 탄생시키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엠블럼은 육지와 바다,하늘에서 최고를 지향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엠블럼이 뜻하는 것처럼 125년 역사의 메르세데스 벤츠는 세계 어디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교황이 타는 전용차이기도 하다. 1930년 교황 피오스 11세의 '뉘르부르크 460 풀만 리무진'부터 시작된 인연은 방탄 유리를 장착하고 엠블럼을 금으로 장식한 요한 바오로 2세의 SCV7,지금 베네딕토 16세의 G500 카브리올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상을 떠난 영국의 다이애나빈도 메르세데스 벤츠를 사랑했다. 붉은색의 500SL은 1991년 다이애나빈이 구매한 뒤 영국 왕실의 첫 수입차로 기록됐다.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질 때도 그는 벤츠 S280을 타고 있었다.

BMW의 엠블럼은 알프스산을 상징하는 흰색,독일 바이에른의 하늘을 상징하는 청색,항공기 · 오토바이 · 자동차 · 배의 엔진을 상징하는 네 개의 칸으로 구성됐다. 엔진이 달린 모든 것의 최고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BMW는 운전자를 대상으로 '시큐리티 드라이버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3일에 걸쳐 진행되는 이 트레이닝은 운전자에게 고속주행 간 위험 인지와 극한의 상황에서 자동차를 제어하는 방법 등을 단계별로 훈련시킨다. VIP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BMW의 이 같은 정책은 명품 자동차로서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으며 메르세데스 벤츠의 강력한 경쟁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