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몇 년 전부터 '인생 2모작'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현직에 있을 때가 첫 번째 무대요,은퇴를 하고도 새로운 무대에서 '먹고살기 위해' 또 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모든 2분법이 그렇듯 인생을 2모작으로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 자기모순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첫 번째 무대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 그래야 두 번째 인생이 가능하다. 첫 번째 무대에서 노후자금 마련을 포함한 경제적 성공만이 유일한 잣대가 되다 보니 이루지 못한 경우는 1막이 끝나지 않게 된다.

인생 2모작이 실패하는 이유는 목표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경제적 안정만이 목표가 되다 보니 다른 가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진다. 일본의 경영학자 오마에 겐이치가 분류한 인간의 네 모습,즉 개인 직장인 가정인 사회인 가운데 한두 가지에만 집중하게 돼 다른 것을 놓치는 미완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최근 자기계발 연구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인생 3모작'은 보다 적극적인 인생설계를 주문한다. 마치 큰 기업을 경영하듯이 각자가 자기 인생의 최고경영자(CEO)가 돼 원대한 비전을 세우고 실천하라는 얘기다.

이렇게 나눈다. 첫 번째 시기는 30세 정도까지다. 무엇인가를 얻는(to have) 시기다. 배우고 익히고 경험하는 노력을 기울여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단계다. 이 시기에 기울인 노력이 다음 무대의 베이스캠프가 된다. 두 번째 무대는 60세 정도까지 이르는 일하는 시기다. 이 구간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는(to achieve) 때다.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것을 비롯 각자의 일터에서 최고의 단계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시기다. 보통의 경우는 여기까지를 현역으로 보고 이후는 은퇴라고 부른다.

그러나 3모작 인생경영에서는 이 두 번째 무대에서 이룬 것이 바탕이 돼 정말 중요한 제3막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3막은 60세 이후,빠른 사람은 50대 중반 이후부터 시작되는데 무엇인가를 나누고 주는(to give) 시기다. 이때에 와서 개인들은 인생의 목적을 찾고 자기 삶의 의미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3분법의 연원이 될 만한 모델은 모세의 삶이다. 모세는 120세를 살았는데,40년은 이집트의 왕자로,또 다른 40년은 양치기로,그리고 마지막 40년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살았다. 세상의 최고,최하 인생을 각각 경험하고 마침내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삶을 보낸 모세의 얘기를 연구가들은 인생에서 추진해볼 것이 오로지 세속적인 삶의 성취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본보기로 삼고 있다.

3모작은 2모작의 업그레이드 버전이기도 하다. 건강한 중년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왕이면 제대로 된 목표로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는 분위기가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비단 개인뿐 아니다. 기업도 이제 오로지 승리하기 위한 경쟁력만을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회사 활동을 통해 무엇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쪽으로 성숙해져가고 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의미 있는' 미래를 얘기하는 인생 3모작은 아직은 한가한 논의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고 그들이 시장의 중심세력이 돼가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조짐이 분명 보인다. 요즘 들어 대 · 중소기업 상생,노블레스 오블리주 등 논의가 많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가 성숙해가면서 가치관도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변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