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초기였던 2003년 3월20일 새벽 미군은 200만장의 전단을 공습작전 지역에 뿌렸다. 눈에 띄는 공중방어무기를 버릴 것,차량에서 1㎞ 이상 떨어질 것,차량에 백색깃발을 꽂을 것 등 미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8가지 방법을 그림과 함께 알려주는 내용을 담았다. 이어 후세인 사망설,이라크 고위층 망명설,군병력 대거 탈영설 등을 끈질기게 유포했다. 이런 심리전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해 사단 규모 병력이 통째로 투항하기도 했다.

2차대전 때 연합군은 적진에 항복 요령이 실린 전단을 대량 살포했다. 명령에 절대복종한다는 독일군의 성향을 간파해 아이젠하워의 서명이 들어간 명령서 모양으로 만들었다. 또 런던 식당의 메뉴가 적힌 전단도 뿌렸다. 연합군 포위망에 갇혀 줆주리던 독일진영을 동요시키기 위해서였다. 2차대전 중 연합군이 뿌린 전단은 무려 80억장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 전단은 폭탄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종이폭탄'으로 불렸다.

한국전쟁에서도 연합군은 660여종 25억장에 이르는 '삐라'를 쏟아부었다. 미군은 아예 '적을 삐라로 파묻어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북한 측도 367종,3억장을 뿌리며 대응했다. 양측 모두 '귀순하면 추위와 배고픔을 면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을 주로 담았다.

심리전은 말 그대로 무기 없이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전쟁기술이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게 최선'(손자병법)이라고 한 것도 심리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심리전에는 다양한 수단이 동원되지만 사실을 있는대로 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2차대전 때 활약했던 미국 심리전 전문가 대니얼 러너도 "심리전은 설득이어서 신뢰라는 조건이 필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사실전달만이 효과를 낸다"고 단언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제재방안의 하나로 정부가 6년 만에 대북 심리전을 재개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FM방송(자유의소리)을 지난 24일부터 다시 내보내기 시작한 데 이어 전단을 살포하고 확성기와 대형 전광판도 가동할 예정이다.

국내외 뉴스,한국 발전상,자유민주주의 우월성 등을 알려 북한군과 주민의 기강을 흔드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저들의 협박과 생떼를 받아줄 수 만은 없어 나온 고육책이겠으나 아직도 이런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 한반도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