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분양시장이 죽었는데 중소기업 자재를 사용하면 아파트 청약자들이 항의합니다. " "중소기업 제품 때문에 하자가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집니까. "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제품 직접 구매가 법으로 의무화된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공공기관과의 협의를 위해 지방 중소기업청을 찾은 중소기업인들 중 상당수는 '제품을 구매하겠다'는 반가운 소식 대신 이 같은 질타만 받고 나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2004년 '중소기업 진흥 및 제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공공기관이 공사를 발주할 때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자재를 직접 구매토록 했다. 대기업에 통째로 공사를 맡기면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이익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은 유명무실했다. 공공기관들은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조항을 통해 빠져나갔다.

보다 못한 정부는 지난해 아예 새로운 법(중소기업 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천재지변이나 국가재난 같은 상황,도서산간 지역 공사여서 중소기업 자재를 쓰기 불편한 상황이 아니라면 무조건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토록 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지방중소기업청장과 협의해서 인정받는 경우에는 대기업에 공사를 일괄적으로 맡길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은 지난해 11월 발효됐지만 여전히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방중기청장과 협의하도록 한 조항이 공공기관들에 빠져나갈 틈새가 됐다. 협의 건수는 올해 1월 1건이던 것이 2월에는 7건,3월에는 24건으로 늘어났다.

공공기관과 지자체들은 중소기업에 맡기면 공사 품질에 하자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거나 그동안의 납품 실적이 변변치 못했다는 이유를 내건다. 게다가 공사 때마다 자재별로 5~30개씩 나눠서 발주하다보면 공사가 지연될 수 있고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인들은 '의지의 문제'라고 반박하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중소기업도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이룬 글로벌 경쟁력만큼 이미 알차게 성장해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고경봉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