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고슴도치’ ‘숙명의 코알라’...‘컵케익’ ‘도넛’ ‘에클레어’...‘시카고’ ‘카이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단어만을 듣고는 무엇과 연관이 있는지 쉽게 알지 못한다. 동물 이름, 간식 종류, 도시명 등인 것 같긴 한데 어디에 쓰이는 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언뜻 암호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단어들은 모두 IT업계에서 쓰는 ‘코드명’이다. IT업체들은 특정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최종 완성품이 나오기 전 개발명, 즉 일종의 코드명을 사용한다. PC업계에서 특히 코드명을 활발하게 붙인다.

◇ 애플 ‘맥’ 고양이과 ‘동물’에서 코드명 따와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사의 운영체제인 윈도우에 한동안 도시 이름을 버전별 코드명으로 사용했다.

윈도 95는 미국의 도시 시카고(Chicago), 이듬해 발표한 소규모 업그레이드판은 내쉬빌(Nashville), 윈도 98은 멤피스(Memphis), 윈도 2000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Cairo)에서 따왔다.

윈도우XP와 가장 최신인 윈도우7은 각각 캐나다의 스키장인 휘슬러(Whistler)와 블랙콤(Blackcomb)이라는 코드명을 달았다. 블랙콤은 이후 코드명 비엔나(Vienna)로 변경됐다가 2009년 10월 정식으로 윈도우7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애플은 맥(매킨토시) 운영체제인 맥 OS X(10)의 개발 코드명에 고양이과의 동물을 사용한다.

10.0버전은 치타(Cheetah), 10.1은 퓨마(Puma), 10.2는 재규어(Jaguar) 등이다. 최신 버전인 10.5에서는 레오파드(Leopard)라는 코드명을 적용했다.

동물 이름을 코드명으로 붙이는 경우는 또 있다. 개인컴퓨터용 공개 운영체제 리눅스의 한 종류인 ‘우분투’(Ubuntu)는 버전마다 다소 난해(?)한 동물 이름을 쓰고 있다.

2004년 발표된 4.10버전은 ‘혹 난 혹멧돼지(Warty Warthog, 5.04는 백발의 고슴도치(Hoary Hedgehog), 5.10버전에서는 산들바람의 오소리(Breezy Badger)를 사용했다. 지난해 나온 9.10버전은 숙명의 코알라(Karmic Koala)란 코드명을 붙였고, 4월 말 나올 예정인 최신 10.04버전에서는 맑은 스라소니(Lucid Lynx)를 적용했다.

◇ 구글 ‘안드로이드’ 각종 ‘간식’ 버전별 코드명 삼아

그런가하면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플랫폼은 버전마다 각종 디저트 종류에서 이름을 따온다.

최초 버전인 1.5는 컵케익(Cupcake), 1.6버전은 도넛(Donut), 2.0과 2.1버전에서는 에클레어(Eclair)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5월부터 적용될 최신버전에서는 얼린 요거트를 뜻하는 ‘프로요’(Froyo). 2.5버전에서는 ‘진저 브레드’(Ginger bread)가 사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컵케익을 시작으로 알파벳순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CPU업계의 양대 축인 인텔과 AMD도 도시 이름에서 코드명을 가져온다. 인텔의 경우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미국의 소도시, AMD는 전 세계 유명 대도시 이름을 딴다.

인텔 펜티엄4는 프레스콧(Prescott, 미 애리조나 중부 도시), 셀러론D는 프레스콧-V, 펜티엄D는 프레슬러(Presler), 스미스필드(Smithfield) 등이다.

AMD 애슬론64는 영국의 뉴캐슬(Newcastle), 애슬론64-FX는 미국 샌디에고(San Diego), 셈프론의 경우 프랑스 파리(Paris)에서 따왔다. 식스코어 옵테론은 터키의 이스탄불(Istanbul)을 사용했다.

IT업계가 이처럼 제품마다 코드명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개발단계에서 제품의 특징 등이 경쟁사에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보안책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디저트나 동물 이름처럼 재미있는 대상을 코드명으로 삼는 것은 힘든 개발 단계에서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찾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고 보기도 한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