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가 25일 금융위원회의 지침을 받아 '사외이사제도 모범규준'을 확정,발표함에 따라 앞으로 금융지주회사와 은행들의 지배구조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이 사실상 분리되면 이사회의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이 강화되고 확실한 대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10년 이상 집권해 온 CEO들의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CEO-이사회 의장 분리가 대세 이룰 듯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에 은행권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분리와 선임 사외이사제 중에서 병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발표된 내용을 보니 분리가 원칙이고 선임 사외이사는 예외적인 경우여서 당황스러웠다"며 "분리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일부 은행이나 지주회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벌써부터 새 이사회 의장 후보에 대한 인선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나오고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론된다. 특히 CEO가 10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신한지주와 하나금융은 CEO가 연임하는 데 대한 여론 부담을 덜기 위해 이사회 의장 분리를 적극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상반기 중 다른 은행과의 합병 방안이 나올 예정인 만큼 지배구조를 미리 바꾸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과 함께 정부 소유 은행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외이사 물갈이 불가피

사외이사 임기를 5년 이하로 제한하고 겸직이 금지됨에 따라 오는 3월 은행과 금융지주사들의 주주총회에서는 10여명의 사외이사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우선 KB금융지주는 3~4명의 사외이사가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사외이사 9명 중 자크 캠프 ING보험 아시아 · 태평양지역 사장과 변보경 전 코오롱아이넷 대표 등 2명이 3월 임기가 끝난다. 국민은행과 전산용역 계약을 체결한 적이 있는 기업의 회장인 A사외이사는 임기가 내년 3월이지만 직 · 간접적으로 사퇴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KB금융의 경우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고 의장의 임기도 1년이어서 이와 관련된 부분은 문제가 없는 상태다. 하지만 현재 이사회 의장인 조담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는 올해 3월 임기 5년을 채우게 된다.

조 의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여서 5년 임기 제한 조항의 적용을 받지는 않지만 최근 사외이사제도를 놓고 금융당국과 마찰을 빚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인이 용퇴를 결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KB금융은 27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모범규준 적용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우리금융지주는 7명의 사외이사 전원이 3월 임기가 만료된다. 그러나 대부분 재임 기간이 짧아 임기 2년을 보장하는 개편안을 적용할 경우 연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영호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은 키움증권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어 교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신한지주에서는 총 12명의 사외이사 중 필립 레니엑스 BNP파리바 서울지점장과 류시열 법무법인 세종 고문이 5년 이상을 재임했다. 신한은행에서도 서상록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임기 3년인 하나금융 사외이사 중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과 정해왕 전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등의 임기가 3월 만료된다. 모두 7명의 사외이사 중 송상현 서울대 법대 교수와 이유재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 등이 재임기간 5년을 넘겼다.

김인식/강동균 기자 sskiss@hankyung.com

모범규준=가장 보편화된 관례나 효율적인 관행을 말하는 것으로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의 번역어다. 금융권에서는 준법감시인제도,프로젝트파이낸싱,내부회계관리제도 등 사안별로 업계 내 합의 사항을 정리해 모범규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법이나 감독규정처럼 강제성을 갖고 있진 않다. 은행 업계에서 만든 일종의 '자율협약'이다. 이번 사외이사제도 모범규준 역시 법률적 강제성은 없지만 감독당국에서 은행 경영 평가 때 참고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임의 규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