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한 전문가들과 시장참여자들의 의견은 한곳으로 모이는 듯 하다. 세계 최고의 선견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버핏의 이번 베팅이 ‘세계 경제(특히 미국 경제)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입증하는 결단으로서 ‘미래의 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부흥, 중국 경제의 성장, 원자재 가격 상승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장미 빛이다.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자. 어떠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그냥 보는 것과, 꺼풀을 벗겨가며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종종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실제로 버핏의 베팅은 컨센서스 시나리오와 반대의 경우일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경제의 부흥, 중국 경제의 성장, 원자재 가격 상승의 조합은 한마디로 ‘지속적인 세계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계 경제의 양적 확대는 지역간 규제 철폐에 따른 자유로운 자본 유/출입과 국제교역 증가로 대변되는 ‘세계화’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범세계적인 테크놀로지 확산에 의하여 가속화되었다. 결국 세계 경제 성장의 키워드는 탈규제 시장주의에 따른 세계화, 테크놀로지 확산 그리고 국제교역으로 압축될 수 있는데, 사실상 이는 전혀 새롭거나 우연한 것이 아니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빗 리카르도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파를 초월하여 모든 경제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주창해 온 경제성장의 전제조건이다.
자본조달 경로가 다양화되고 통화유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장이 커지는 것은 세계화 물결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더 나아가 각 경제 주체가 기대할 수 있는 ‘열매’가 많아지면서 양적/질적 경쟁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세계화란 본질적으로 ‘기하급수적’ 확산, 또는 ‘압축성장’의 성격을 지닌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지구촌 경제 세계화 물결의 한 가운데 있는 산업은 항공/해상 운송 및 종합 물류산업이다. 상대적으로 볼 때 육상운송, 특히 철도산업은 가장 직접적인 수혜산업이 아니다.
밑의 그림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쌍방간의 직접적인 비교를 위하여 여기에서 적용하고 있는 지수는 철도지수에 대비한 운송/물류지수의 상대강도(상대수익률)인데, 방향성과 시기 측면에서 공히 국제교역 증가 추이와 궤를 같이 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금융시장 효율성이 의심되었던 2007년을 전후로 하여 이례적으로 소폭 선행한 것을 제외하면 운송/물류지수의 상대강도는 명확한 정(正)상관관계를 보이며 국제교역 증가 추세와 동행해 왔고, 또 동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철도기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때는 경제성장과 국제교역이 둔화되는 시점에서이다. 장기적으로 본 국제교역 증가 추세의 정점은 2004년 중반인데, 그 시점에서부터 증가 폭이 서서히 둔화되며 철도기업 주식 역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의 지수는 철도지수에 대비한 운송/물류지수의 상대수익률이기 때문에 철도지수의 상대수익률은 반대로 표현된다. 즉 적색 선이 하락하는 것이 철도지수의 상대수익률 상승을 나타낸다.)
타 투자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자료 축적과 분석은 당연히 거쳤을 테고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휘스퍼(whisper) 정보’도 가장 많을 것이 틀림없는 세계 최고의 부자인 버핏이 본 ‘그것’은 무엇일까? 이를 거시경제적인 시각, 미시경제적인 시각, 그리고 총체적인 시각에서 각각 조망해보고자 한다.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버핏은 아이러니하게 세계화에 상반되는 (일시적이나마) ‘경제블록’의 형성 가능성과, 그에 따른 국제교역 증가세 ‘둔화’에 베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경제 역시 지금까지의 높은 성장보다는 제한된 범위에서의 느린 성장을 보일 것이라는데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개월 전에 버핏 자신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도 찾을 수 있다. 8월18일 버핏은 <달러효과(The Greenback Effect)>라는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재정건전성 훼손을 지적하면서 현재는 미국 달러의 미래가 국회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권의 (부채를 줄이려는) 단호한 의지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피력했다. 그에 앞서 8월16일에는 <미국 주식을 사라. 나처럼... (Buy America, I am)>이라는 글을 통해 장기적인 시각에서 미국 기업을 사야 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이 글에서 만약 주가가 더 떨어진다면 조만간 자신의 포트폴리오는 100% 미국 기업 주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두 개의 글은 서로 어떠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가?
지속적으로 달러를 찍어내고 있는 결과로 달러 약세가 심화될수록 국제교역 비중이 높은 국가들(특히 미국소비자에게 수출을 많이 하던 국가들)은 결국 가격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자구책으로 통화절하를 꾀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이는 범세계적인 ‘경쟁적 통화절하(competitive easing)’로 연결될 수 있다. 마치 1930년대 세계대공황 이후, 전세계의 모든 국가가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를 절하하면서 대륙 별로 자연스럽게 경제블록이 형성된 것처럼 말이다. 범세계적 통화절하의 궁극의 결과는 구매력 하락과 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른 (실물)경제 활동 둔화와 축소와 그에 따른 국제교역 하락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의 코스트푸쉬 영향과 국제교역 증가세 둔화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철도기업은 향후 수년간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강력한 후보다.
버핏은 이와 같은 시나리오가 향후 수년간 진행될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만약 경쟁적 통화절하 시나리오가 실제로 현실화된다면, 수년 후 그에 따른 후유증에서 그나마 괜찮을 국가는 미국이다. 데모그래픽에 근거한 현 시점에서의 디플레이션 압력이 통화절하가 몰고 올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해 줄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미국의 구조적인 소비압력이 자연적인 인구 증가효과에 따라 2015~2017년을 전후로 해서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향후 수년만을 볼 때, 국제교역의 증가세 둔화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국가는 미국이 아니라 수출지향 경제시스템을 지닌 국가들이다. 미국기업 예찬론의 시작이다. 그리고 8월 18일의 기고문인 <달러효과(The Greenback Effect)>에서 미국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며 정치권에 호소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상 버핏은 (설사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정치권의 이니셔티브 여부와 무관하게 미국경제의 자생적인 복원력에 자신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향후 수년간의 혼돈 후에 (버핏의 전망대로) 만약 미국경제가 가장 먼저, 또는 가장 뚜렷하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벌링턴 노던 산타페의 지분투자는 그야말로 대박이 될 것이다. 버핏은 단기적으로 안정과 우월적 상대가치를 확보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성장 가능성과 절대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안타를 노리다 보면 홈런을 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일석이조를 노리는 뛰어난 전략이다.
만약 버핏이 지속적인 세계화에 기초한 범세계적인 경제성장에 확신하고 있다면 벌링턴 노던 산타페 대신 페덱스(Fedex), CH 로빈슨(C.H. Robinson), 또는 엑스페디터(Expeditors International of Washington)와 같은 국제교역 수혜 기업에 주목했을 것이다. 밸류에이션을 보아도 CH 로빈슨과 엑스페디터는 지난 5년간 평균 30배와 35배의 P/E(주가수익배수) 수준에서 거래되었으나 현재는 그보다 낮은 수준인 26배와 28배 정도에서 각각 거래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교하자면, 지난 5년간의 평균 수치인 15배보다 높은 20배의 가격표가 붙어 있는 벌링턴 노던 산타페에 비하여 절대로 매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없는 가격 대이다. 산업 재편이 진행되고 있는 해운업계에는 헐값의 기업이 넘친다. 그런데 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버핏은 관심이 없다. SEC filing에 따르면 버핏의 포트폴리오에서 찾을 수 있는 국제교역 수혜 기업은 UPS가 유일하고, 그나마 보유비중도 매우 낮다.
두 번째로 미시적 시각에서 보면 버핏은 지속적인 테크놀로지 확산에 베팅하고 있는 것 같다. 투자, 구입, 재고관리, 생산, 그리고 관리로 이루어지는 밸류체인 매니지먼트가 기술적으로 고도화될수록 투자, 재고, 생산, 상품 거래는 규모와 횟수 면에서 더 세분화된다. 예컨대 (이전의 10년 후를 바라보는 장기 투자에 비해) 단기화되고 있는 기업의 투자 집행과 기술 혁신에 따라 언젠가는 ‘Just-In-Time‘ 시스템에서 ‘Right-On-Time’ 시스템으로 대체될 재고관리 시스템의 조합이 불러 올 결과가 무엇이겠는가? 전체적인 물류비용의 구조적 하락에 대비한 육상운송비의 상대적 상승 여력(resilient pricing) 이다.
결론을 내리는 의미에서 총체적인 시각에서 버핏의 속마음을 읽으려 노력해보자. (앞 단락에서 언급한) 기업 투자의 단기화는 비단 테크놀로지 확산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는 21세기형 경제시스템의 특성에 따라 생산에 필요한 자금, 즉 현금의 금리탄성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현상이다 (오메가포인트 경제학, 팜파스 출판사, 335~338쪽).
이러한 상황에서 향후 수년간 전세계적 경쟁적 통화절하의 결과로 소비압력이 둔화된다면 실물경제에 대비한 금융시장의 영향력, 또는 상대적 규모는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이 금년 들어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채권 거래로 매일 평균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단일기업에 대한 지분투자로는 역사상 가장 많은 금액을 지불한 금번의 ‘올인’에 앞서 버핏이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인 업종은 단연 금융업이었다 (버크셔 헤더웨이는 사실상 보험사라고 할 수 있다). 금융(보험)과 철도를 양 축으로 하는 버핏의 바벨(barbell) 전략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을 만큼 미묘하면서도, 매우 구체적이고 정교하다.
모든 사람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는 그의 투자관이 녹아 들어가 있다. 버핏의 능력과 업적, 그리고 논리에 대한 각자의 의견은 다를 것이고, 버핏의 금번 베팅이 홈런이 될지 병살타가 될지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밝혀질 것이다. 다만 특별하게 비범한 그의 의견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투자가뿐만 아니라 기업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알프레드 박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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