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에게는 아버지가 네명이다. 물론 나아준 진짜 아버지(생부)는 한분이다. 나머지 세명의 아버지는 인생의 어려운 고비고비마다 자신의 행로를 바꿔준 은인들이다. 정 총리가 이들을 진짜 아버지처럼 모시는 이유다.

자신을 낳아준 첫번째 아버지는 정 총리가 어렸을때 돌아가셨다.정 총리는 숙부집에서 자라게 된다. 그를 입적시켜준 숙부가 두번째 아버지다. 세번째 아버지는 외국인이다. 독립운동가로 자신이 경기고 재학시절 학비를 대준 스코필드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경기고 재학시절 미국 견학을 돕는 등 정 총리에 비전을 심어준 인물이다.

네번째 아버지는 학문의 길을 열어준 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다. 가난뱅이로 한국은행에 입사했던 청년 정운찬에게 미국 유학을 권했던 게 바로 조순 전 총재다. 뿐만 아니다. 조순 전 총재는 정 총리의 결혼까지 책임지다시피했다. 정 총리 결혼을 중매선 사람이 바로 조 전 총재다.

정 총리 부인이 당시에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당시 그 장인이 결혼을 강력히 반대했다고 한다. 당시 정 총리는 촉망받는 젊은이임에도 틀림없었지만 세상적으로는 가난한 봉급장이로 크게 내세월 게 없던 처지였다. 결혼이 벽에 부닥치자 조 전 총재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한 정치권 인사의 전언이다. “조 전 총재는 양주인 시버스리걸 두병을 갖고 정 총리의 장인될 사람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 자리서 조 전 총재는 정 총리의 사람됨을 들어 설득했고 결국 승락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정 총리가 왜 조순 전 총재를 아버지라 부르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정 총리의 인생에서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 있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고 국회의원 3선을 한 김종인 전 의원이다. 정 총리가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요즘도 현안이 있을때마다 자주 만나 의견을 구하는 대상이다. 김 전 의원과의 인연은 5공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 교수이던 정운찬 총리가 직선제 개헌 운동 등 시국관련 행보로 교수직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했을때 그를 구해준 게 바로 김 전 의원이다. 당시 경제수석이던 김 전 의원이 대통령을 찾아가 “그런 문제로 교수를 자를 경우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며 이를 막았다고 한다.

정 총리가 총리직 수락여부를 상의한 사람도 바로 김 전 의원이다. 정 총리는 청와대로부터 총리직을 제의받았다. 문제는 조건이었다. 청와대는 정 총리에 총리직을 제의하면서 몇가지 단서를 달았다. 그중 하나가 아마도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 해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여권관계자는 “청와대는 정정길 실장을 통해 정 총리에게 총리직을 제의했다”면서 “세종시 문제 해결 등 몇가지를 총리직 수락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총리가 총리에 내정되자마자 민감한 사안인 세종시 문제를 들고나온 건 이런 배경에서로 보인다. 김 전 의원은 정 총리로부터 이런 류의 고민을 전해들은 뒤 정 총리에 총리직 수락을 권했다고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걸 잘 아는 김 전 의원이었기에 이를 권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종시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종시는 총리직을 맡으면서 엄청난 숙제이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반대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 총리가 이를 잘 풀어낼 경우 단숨에 대선주자 반열에 오를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세종시는 정 총리에겐 위기이자 기회다. 세종시가 아니었더라면 차기대선과 관련해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정면 대결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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