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가계금융전문 은행인 국민은행이 가계대출을 사실상 중단한 것은 정부의 '밀어붙이기 식' 중소기업 대출 정책에서 빚어졌다.

정부는 시중은행과 맺은 외화채무 지급보증 관련 양해각서(MOU)를 통해 올해 원화대출 순증분의 45%를 중기대출로 채우도록 했다. 은행이 가계대출 등을 늘릴 경우 중기대출도 같이 증가시켜야 하는 부담을 진 것이다.

◆국민은행,"가계대출 억제하라"

올 들어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되고 아파트 거래가 늘어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간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3조3000억원 늘었다. 이는 부동산 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2006년 11월 이후 최대 규모의 증가세다.

이 중 국민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7932억원 늘어 전체 대출증가액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이 느는 만큼 중기대출을 늘려야 한다는 부담이다. 전체 대출 중 중기대출 비중 45%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기대출은 연체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정부가 대출 금리를 낮출 것을 압박하면서 리스크는 커지고 수익성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가계대출 축소에 나섰다. 부실한 중기에 대출을 늘려야 하는 부담이 너무 커 가계대출 억제라는 고육책을 선택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2월 말부터 2000만원 이하 소액대출의 경우 가산금리를 1.0%포인트 높여 받도록 했다. 3월27일부터는 모기지보험을 이용한 대출 취급을 제한했다.

4월 들어선 각 영업지원본부를 통해 대출 목표를 초과한 영업점,즉 영업 상위 지점에 대해 모든 신규 대출을 할 때 본부 승인을 받도록 했다. 특히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모집인을 통한 대출의 경우 원칙적으로 승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의 이번 조치로 건설업계에서는 최근 거래가 늘어나면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다시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대출받기가 어려워진다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언제까지 중기대출 압박하나

정부의 막무가내식 중기대출 확대 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경기 상황을 따지지 않고 중기대출 확대를 밀어붙이면서 이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중기대출을 올해 연간 50조원,상반기에만 30조원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경기침체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1분기 순증액은 10조원에 그쳤다. 상반기 순증 목표 30조원에 비춰보면 은행들이 속도를 더 내야 할 판이다.

문제는 은행들이 떼이지 않고 대출할 중소기업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 부진으로 괜찮은 중소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줄었다. 대출 증가 목표가 성장률 3%를 기준으로 정해졌는데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급격히 늘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목표 자체를 낮춰야 한다고 요구한다. 은행과 기업이 모두 살 수 있도록 조화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