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오셨던 분은 상담받느라 점심식사도 거르셨어요.”

여의도 A증권의 한 상담직원은 펀드에 가입하는데 얼마나 걸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 증권사를 찾았던 직장인 고객이 펀드를 가입하고 나니 오후 한시반이 훌쩍 넘어, 부랴부랴 회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20~30분만에 뚝딱펀드에 가입하거나 심지어 전화로 가입하던 투자자들이 당황할 만 한 변화다.

지난4일 ‘자본시장과 금융 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통법)’이 시행되면서,직장인이 점심시간에 잠깐 증권사나 은행을 찾아 원하는 펀드만 ‘콕’ 찍어 가입할수 있는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무엇이 그리도 많이 바뀐 것일까? 기자가 바뀐 규정대로 상담을 받고 펀드에 가입하는 과정을 체험해봤다.



○ 투자자 정보 확인은 필수


자통법 시행에 따라 가장 크게 달라진 내용은 투자자 정보 확인 과정이다.

예전엔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만 간단히 물어보고 끝났지만 이젠 투자자의 투자능력과 욕구를 파악하는 과정까지 추가됐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은 기자에게 상담직원이 내민것은 두 장의 투자자 정보 확인서다.

자통법 시행과 함께 도입된 ‘투자자정보 확인서’ 는 투자자의 기초정보와 위험 선호도를 묻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투자기간이 길수록,감내할 수 있는 손실이 클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식이다.

기자는 연령대도 낮고 투자 경험이나 지식수준, 감내할 수 있는 손실 수준 등의 항목에서 별 거리낌없이 가장 높은 수준을 택할 수 있었지만 투자자로서는 꼬치 꼬치 캐묻는 질문에 기분이 상할 항목들도 보였다.

상담 직원은 특히 수입원에 대한 질문에 대해 어르신들이 언짢아 한다고 전했다.

위험 선호도를 알아보는 질문에선 안정형, 안정추구형,위험중립형,적극투자형,공격투자형 등 5단계 가운데 위험을 감내하더라도 높은 수준의 투자수익을 추구하는 적극투자형을 선택했다.

상담 직원은 “대부분 고객들이 극단적인 성향은 부담 스러워하기 때문에 위험 중립형이나 안정 추구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이증권사는 기초정보와 위험 선호도 항목 중 보수적인 성향을 투자자의 유형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초 정보에서 높은점수를 받는다고 해도 위험선호도에서 무엇을 선택 하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금융사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고 싶지 않거나,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싶지 않다면 ‘투자자 정보 확인서’를 작성 하기 전에 ‘투자권유 미희망’이나 ‘정보 미제공’란에 체크하면 된다.

이경우 굳이 자신의 투자 등급을 산출하지 않아도 되며, 원하는 상품에 대한 설명만을 요구할 수있다.

문제가 생겨도 금융사에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정보 미제공 투자자 확인서’를 작성해야 예전처럼 맘에 드는 펀드에 제약없이 가입할 수 있다.

기자의 상담을 맡은 직원은 “사실 투자 권유를 희망하지 않는 고객에 대해선 직원들도 부담이 크다”며 “이런분들은 손쉽게 가입이 가능한 인터넷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투자자등급산정


이 증권사는 투자자 등급을 안정형(20점 이하),안정추구형(20점 초과~40점 이하),위험중립형(40점 초과~60점 이하),적극투자형(60점 초과~80점 이하),공격투자형(80점 초과) 등 5단계로 구분하고 있었다.

기자가 기초정보에서 받은 점수는 71.87점,적극투자형에 해당하는 점수였다.

다른 항목에선 가장 높은점수를 받았지만, 투자 가능기간이 1년 이상 2년 이내로 짧은데다 전체 금융자산 중 투자 예정 자금 비중이 20%이상 30%이내로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위험 선호 정도를 묻는 질문에서도 적극 투자형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최종적인 투자자 등급은 적극 투자형으로산정됐다.

○금융상품설명


상담직원은 투자자의 등급에 맞거나 더 낮은 등급의 상품에 대해서만 설명할수 있다고 했다.

등급보다 높은 상품에 대한 권유는 불가능하다. 투자자의 투자 능력이나 요구와 상관없이 특정 펀드 가입신청서부터 내밀던 예전과 크게 달라진 대목이다.

적극투자형인 기자는 등급에 따라 주식형 펀드와 채권형 펀드 등 고위험 이하 상품 가운데 권유를 받을 수 있었다.

상담 직원은 배당형이나 인덱스 펀드 가운데 몇가지 추천 상품을 권유했다. 성에 차지 않은 기자가 평소 관심있던 성장주 펀드 상품에 대해 물었지만 이상품들은 초고위험 상품에 해당돼 권유가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투자자가 원할 경우펀드에 대한 ‘설명’은 가능하다고 했다. 즉 설명은 가능하되 좋다고 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상담직원은 “웬만한 국내 주식형 펀드는 초고위험에속하는데 다같은 이름을 한 성장형 펀드도 고위험과 초고위험으로 나뉘어 있다”며 “판매하면서도 기준이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금융상품선택및재확인

결국 상담을 시작한지 1시간만에 모그룹의 우량계열사들에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하기로 했다.

상품에 대한 특징,수익률,위험도 등을 설명한 2장짜리 핵심 설명서도 읽었다.

약속시간이 촉박한 기자가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해도상담직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투자자가 상품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본인의 의사대로 선택 했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핵심설명서를 읽었다는 서명을 한뒤에 야상담직원이 상품매수 주문을 냈다. 그러나 “적극투자형이라 초고위험 상품에 가입할수 없다” 는 가입불가 메시지가 돌아왔다.

상담직원은 등급에 맞지 않는 상품을 선택할 경우 ‘초과위험 선택 확인서’를 추가로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가 생겨도 투자자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일종의 각서였다.

결국 각서까지 쓰고 ‘투자자 정보 확인서’를 재확인하는 서명을 하고 나서야 원하는 상품에 가입할수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는 기자를 상담직원이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투자자 체크 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는것.

펀드를 가입하는 동안 모든 설명을 잘들었다는 확인서였다. “펀드나 주식매매 등 모든 상품 거래를 할 때마다 과정이 반복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무리 신중한 투자를 원하는 사람이라도 1시간반 동안 설명을 듣고, 9번의 서명을 하고 있노라면 진이 빠질수밖에 없다.

고객이 많지 않은 증권사 상담창구는 덜 하겠지만 갖가지 상품들을 함께 취급하는 은행창구에서 과연 펀드 판매가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상담을 진행하는 상담직원들도 똑같이 힘이 든다고 했다. 한 상담직원은 “하루에 두명까지만 상담할수 있을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재희/서보미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