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향후 해외진출 위한 캐시카우 될것"
IB의 리테일화ㆍ고객 맞춤형 서비스가 과제


글로벌IB(투자은행)로 도약하려면 무엇보다 투자를 위한 '실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수.합병(M&A)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기업 관련 금융과 헤지펀드,원자재 같은 실물투자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벌일 수 있다.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하고 있어야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3년 이상의 장기를 내다보는 IB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글로벌 유동성이 위축된 상황이어서 증자를 통한 자기자본 확충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당장 '종자돈(시드머니)'을 만들기 곤란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자산관리 부문이 한국IB의 유력한 '캐시카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금융위기로 현재 펀드시장을 포함한 증시가 침체상태지만 국내 자산관리시장은 여전히 앞으로 고성장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은 "글로벌IB로 성장하는 것은 멀고 긴 여정"이라며 "먼저 국내 자산관리 부문에서 확고한 수익기반을 다져야만 쟁쟁한 해외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실력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산관리시장 유망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06년 370조원이던 국내 자산관리시장 규모가 작년 말 40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2012년에는 900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글로벌 증시 침체와 한국 경제성장률 예상치 하향 등을 반영해 올 상반기 전망(2012년 1070조원)보다 170조원가량 낮췄지만 여전히 전망이 밝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상순 BCG 이사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자산관리시장은 미국과 선진 유럽이 1.5~2배 정도인 데 반해 한국은 50% 수준에 불과해 장기적으로 발전할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국은 자산관리의 주요 고객인 부자들의 증가세도 뚜렷하다.

메릴린치의 '아시아.태평양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100만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고액 순자산보유자(HNWI)는 2007년 말 11만8000명으로 전년보다 18.9% 늘었다. 이는 인도(22.7%) 중국(20.3%) 브라질(19.1%)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증가율로 세계 평균치인 6.0%를 크게 앞서는 수치다.

반면 국내 증권사들의 자산관리 비즈니스는 아직 개발할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실제 증권사들의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자산관리 비중은 펀드판매액을 포함해도 지난해 11% 수준에 불과해 미국(28.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자산관리형 IB'는 유망한 모델

이런 점에서 호주의 세계적 IB인 맥쿼리의 성공사례는 한국IB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이 회사는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IB처럼 M&A를 통해 '덩치'를 키우지 않고 다른 금융회사들이 간과하고 있던 인프라펀드와 부동산 개발 같은 '숨겨진 시장'을 공략해 자력으로 성장했다. 도로 공항 통신 등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를 유치하고 관련 비즈니스의 인수.거래.자문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개발한 데 이어 이를 펀드로 만들어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IB의 리테일화(소매화)'로 자산관리부문을 키워 성공했다.

이계천 굿모닝신한증권 IB사업본부장은 "그동안 자산관리 영업은 주식 채권 등과 관련된 비즈니스가 주종이었지만 맥쿼리는 'IB의 리테일화'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며 "이는 한국IB에 유력한 사업모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부동산PF나 중국 등의 부실채권 인수 같은 리스크가 따르는 초기 투자는 자기자금으로 시작한 후 고수익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이를 펀드화해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자산관리형 IB모델을 고려할 만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자산관리부문의 수익은 장기 IB 투자를 위한 튼튼한 토대가 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이동걸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은 "2006년 시작한 바이오디젤 원료인 '자트로파' 투자는 최소한 5년을 내다본 것"이라며 "임기 중 결실을 못 볼 수도 있지만 높은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투자수익은 물론 투자한 기업(코라오에너지)의 상장(IPO) 등 기업금융을 통해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표 대우증권 IB사업추진단장은 "자산관리부문은 요즘같이 투자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증권사의 안정적인 수익을 뒷받침하는 완충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산관리 강화에 나선 증권사


현재 이런 의미에서 올 들어 나타난 증권사들의 위탁 수수료 인하 움직임은 수수료를 유인책으로 자산관리를 위한 중장기 고객을 우선 확보하자는 속내가 있다.

삼성 미래에셋 동양종금 등 국내 증권사들도 점차 자산관리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있다. CMA가 대표적이다. 이는 메릴린치가 1977년 처음 내놓은 CMA의 인기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IB로 성장한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삼성증권은 고액 자산가들을 겨냥해 주식 채권 현금 등 주요 자산의 배분 및 운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성 SMA'를 출시, 시장을 넓히고 있다. 미래에셋은 고객 자산관리에 특화된 인력들로 구성된 '맵스팀'을 통해 차별화된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인도를 비롯한 해외 자산관리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자산관리형 IB로 성장하는 데까지는 과제도 많다. 전문가들은 먼저 전문인력을 확보해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건표 단장은 "글로벌 증시 침체로 고객의 안전자산 선호와 우량 금융사로의 자금이동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변화에 맞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시장을 키우고 신규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채무조정 등 기업들의 자산관리 부문도 기업금융과 연계한 새로운 영역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필규 증권연구원 금융투자상품실장은 "이제까지 증권사들의 자산관리 수익원은 펀드 판매에 치중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다양한 자산관리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복합상품 개발과 함께 단순 판매가 아닌 자문 수수료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자산관리 비즈니스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