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보험 교차판매로 인해 소비자들의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교차판매가 시작되면 한 명의 설계사로부터 생명보험 상품과 손해보험 상품을 함께 들 수 있어 좋을 줄만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다. 그동안 "종신보험과 변액연금만 있으면 평생 아무 걱정 없다"고 얘기하던 생보 설계사가 갑자기 "화재보험 하나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반문할 가능성이 높다. 또 매년 한 번 자동차보험 갱신할 때나 전화를 하던 손보 설계사로부터 "변액연금 가입하면 자동차보험료를 더 싸게 해줄 수 있다"고 유혹받는 사례도 적잖이 경험할 듯하다. 교차판매 시작으로 예전보다 더 기승을 부릴 보험설계사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몇 가지 사항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생보는 정액형,손보는 실손형
우선 종신보험,변액연금 등으로 이뤄진 생보 상품과 자동차보험 및 화재보험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손보 상품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가장 큰 차이는 생보 상품은 대부분 정액형이며 손보 상품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손형이라는 점.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생보 상품은 보험 사고시 최초에 약정한 금액을 주는 데 반해 손보 상품은 실제 입은 손해만을 준다.
따라서 생보 상품은 두 개의 보험에 가입하면 두 보험사에서 모두 최초 약정한 대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손보 상품 두 개에 가입한 뒤 200만원의 손해를 입었다면 두 보험사에서 200만원씩,모두 400만원을 받는 게 아니라 두 보험사로부터 각각 100만원씩,총 200만원만 받는다. 실제 입은 손해를 보험사들이 나눠서 분담하는 것이다. 손보 상품은 많은 것보다 제대로 된 상품 하나만 가입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반대로 생보 상품은 보험별로 약정 보험금을 다 준다고 많이 가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통상 생보 상품은 암이나 뇌출혈 등 특정 질병에 걸려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데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한 뒤 그 병이 생기지 않는다면 보험료만 많이 내고 보험금은 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장 개시 시점도 달라
생보와 손보 상품은 보장이 개시되는 시점도 다르다. 생명보험은 첫회 보험료를 납입하는 시점부터 보장이 시작되지만 손해보험은 보통 보장을 받기로 한 날 오후 4시부터 개시된다. 다만 손보 상품 중 자동차보험은 계약일 0시부터,여행자보험은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보장이 된다.
보험 가입자가 질병이나 흡연 등 가입 전 알릴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때 생보사와 손보사가 고객에게 돌려주는 보험료가 다르다. 생명보험은 보험 사고 발생 여부에 관계 없이 전액 돌려주지만 손해보험은 보험 사고가 발생한 후라면 전액을,발생하기 전이면 보통 원금보다 적은 해약 환급금만 돌려준다.
이와 함께 손해보험의 경우 직업이나 직무가 바뀌면 보험 가입 후라도 이를 보험사에 알려야 하지만 생명보험은 그런 의무가 없다. 다만 생보 상품 중 상해보험은 예외적으로 이런 통지 의무가 있다.
자살에 대한 보상 여부도 차이가 있다. 생명보험은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게 증명되거나 보장 개시 후 2년이 넘으면 자살 보험금을 준다. 하지만 손해보험은 어떤 경우에도 자살에 대해 보상을 하지 않는다. 폭행으로 다쳤을 때 생명보험은 재해로 인정해 보상하지만 손해보험은 그렇지 않다.
의료 사고의 경우 생명보험은 입증이 되면 재해로 인정해 보험금을 주지만 손해보험은 지급하지 않는다. 생명보험은 보상할 내역을 특정하는 열거주의(포지티브 방식)를,손해보험은 보상하지 않는 항목을 나열하는 포괄주의(네거티브 방식)를 채택하고 있다.
◆가입 보험이 어느 보험사 것인지 확인
교차판매로 1명의 보험설계사가 생보와 손보 상품을 동시에 판매할 수 있어 소비자들은 가입 상품이 어느 보험사 것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또 보험설계사가 기존 상품을 해약하고 신상품 가입을 권유할 경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존 보험 계약을 중도 해지하면 해약환급금이 이미 본인이 낸 보험료 총액보다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보험 상품에 가입하려면 해약에 따른 손실과 보험료 인상폭,보장 내용 등을 정확히 이해하고 가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교차판매를 통해 보험에 가입하는 소비자들은 보험사를 확인하고 생보와 손보 상품의 차이도 이해한 뒤 상품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