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이 밀집한 미국 뉴욕의 파크 애비뉴.이 곳 270번가에 위치한 JP모건체이스 본사 건물 뒤쪽으로 길 바로 건너편에는 월가의 5대 투자은행의 하나였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랑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휩쓸려 문을 닫은 베어스턴스 본사 건물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건물 어디에서도 베어스턴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3월 JP모건에 인수되면서 간판을 바꿔 달았고 1층 리셉션 데스크에는 JP모건체이스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JP모건체이스가 베어스턴스를 인수한 금액은 주당 10달러.그나마 베어스턴스 주주들이 '헐값 매각'이라며 반발해 올린 가격으로 총 인수금액 9억5000만달러는 베어스턴스 본사 건물 가격(11억달러 평가)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JP모건체이스의 베어스턴스 인수는 '월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로 나선다'는 이 회사의 오랜 전통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사례였다. 1905년 미국이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졌을 때 당시 JP모건은 집단 파산위기에 직면해 있던 월가의 은행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자금난에 빠진 뉴욕증권거래소(NYSE)까지 지원했던 JP모건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없었던 시절 미국의 중앙은행이었다.

1799년 설립 이후 월가의 구원투수 역할을 계속 맡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금융회사로 존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각 분야의 최고 경쟁자들과 피말리는 싸움을 벌이면서도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지 않고,동시에 위험 요인들을 철저히 관리하는 금융 본연의 모습에 가장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실제로 JP모건체이스는 각 분야의 최고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투자은행 부문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자산운용부문은 피델리티와 UBS 등과 피말리는 접전을 벌이고 있다.

소매금융은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신용카드 부문은 아메리칸익스프레스와 싸우고 있다. 이들 사업부문은 전체 매출과 이익의 15∼20%를 각각 창출하면서 최적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고 있다.

빌 윈터스 JP모건체이스 IB부문 공동 최고경영자는 "이들 6개 사업분야의 강력한 경쟁력을 토대로 최고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투자은행은 기업을 상대로 한 자금관리 서비스의 수익성을 높여주고,높은 투자수익률은 소매금융이 미국 내 예금유치 실적 1위를 기록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또 소매금융의 성공은 신용카드 사업 확대로 이어지는 연쇄상승 효과를 만들어낸다.

'경쟁을 토대로 한 고수익 창출'이 JP모건체이스 성장의 원동력이라면,'철저한 위기관리'야말로 다른 금융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JP모건체이스만의 높은 위상을 만들어낸 핵심이다.

각 분야의 최고 경쟁력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협업해 시장의 위험을 간파해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JP모건체이스는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이 767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미국 내 주택담보대출 관련 시장에서 비중(점유율 1위,15%)이 높았지만 서브프라임 충격은 받지 않았다.

지난해 5월,제임스 디몬 회장을 비롯한 핵심 수뇌부들이 뉴욕에 모여 경영진 회의를 열고 주택담보대출 관련 파생상품시장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한 것.

당시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자산담보부증권(CDO)과 같은 구조화투자(SIV)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있었으나 JP모건은 자체 리스크 관리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사업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 빠져나오기로 그때 결정했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크리스틴 렘카오 IB부문 마케팅 총괄)는 설명이다.

고수익에 빠져 다가오는 위험에 둔감해진 다른 금융회사들과는 달리 JP모건체이스는 동물적인 후각을 전혀 잃지 않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결과 월가 투자은행(IB)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었지만 JP모건체이스는 전년보다 오히려 순이익이 10% 이상 증가하면서 베어스턴스를 인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임석정 JP모건 한국 대표는 "위험을 경시하지 않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인재를 보유하는 것,틀에 얽매이지 않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주고 받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JP모건체이스의 노하우"라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