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그 빈 공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채워가면서 성숙해진다.

치유와 소통의 작가 김형경씨(48·사진)가 4년 만에 상실과 채움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 ≪꽃피는 고래≫(창비)를 펴냈다.

작가는 열일곱 살 소녀 '니은'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엄마 아빠를 한꺼번에 잃고 마음의 구멍을 어떻게 메워나가느냐를 잔잔히 따라간다.

크나큰 상실감을 채울 수 없는 니은은 아빠의 고향 처용포를 찾는다.

울산을 모델로 한 허구의 공간 처용포는 소설 속에서도 국내 유일의 고래잡이 항구가 있던 곳이자 대형 공업단지로 변모하는 장소로 그려졌다.

그곳에는 포경금지령으로 잡지 못하는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금지령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장포수 할아버지,일흔이 넘어 한글을 배우러 다니는 왕고래집 할머니가 있다.

니은은 이들과 생활하며 점점 마음 속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슬픔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가게 된다.

소설은 단순히 성숙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잠언집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한 소녀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독자들이 그 고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게 만든다.

니은은 부모를 잃은 뒤 '세상은 내 바깥으로 지나가고 나는 세상과 무관한 사람이 되었다'며 무기력함에 빠진다.

이런 무기력함은 점차 외로움으로 바뀌고,다시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발전한다.

그는 중학교 친구 '나무'를 보고도 '내가 어디까지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중략)그 순간에도 내면에서는 칼날들이 회오리치고 있어,내 손이 닿으면 나무가 더 크게 다칠 게 분명했다'며 마음의 화를 삭히지 못한다.

하지만 니은은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의 굴곡진 삶과 주변 친구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치유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는 어른이 된다는 것의 핵심을 '엄살,변명,핑계,원망하지 않는 것 말고 자기 삶에 대한 밑그림이나 이미지를 갖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이 작품을 두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애도하는 지혜"라며 "이제 더이상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는 기술에 통달한 현대인에게 김형경은 이 모든 상투성을 '기적'으로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