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찰칵 셔터 소리가 적막을 깨뜨리며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밤새 폭우는 지나갔지만 바다는 아직 불안해 보인다.바다는 언제나 그렇듯이 홍시 같은 속살을 내보이며한겹옷을벗는다.

일렁이는 파도 속에 황금빛 외길이 생기며 새날이 밝아오고 있다.크루즈 콤파스(선상신문)를 펴본다.날씨 맑음,일출시간 오전 5시9분,일몰시간 오후 6시44분.

오늘의 엔터테인먼트는 로얄 캐리비안 랩소디호의 가수와 댄서들이 펼치는 피아노맨.권장 복장은 정장 등 등….볼거리부터 먹을거리,즐길거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초보 중국어 교실에서 공부를 해볼까,암벽등반은? 볼룸 댄스는? 모두 욕심이 난다.기항지에서의 관광은 어떨까.고베 아니 교토로 가볼까.랩소디호는 부산에서 출발,제주와 상하이를 거쳐 고베로 향하고 있다.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이벤트와 쇼

매일 선실로 배달되는 선상신문을 잘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꽤 있다.

오늘의 한정 면세품,주얼리 특별 판매전 및 이벤트 행사,영화 상영,댄스파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크루즈 여행은 시간이 되면 식사하고,선베드에 누워 일광욕이나 하고 책이나 펴본다면 심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지루할 수 있다.

그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면 몰라도.그런 것들을 선상신문이 말끔히 해결해 준다.

오전에 게임을 즐기며 쿠폰 받아 선물도 듬뿍 타고,오후엔 각국 사람들과 어울려 댄스도 배우고 시간대별 프로그램을 다 찾다보면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선상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크루즈 여행의 매력이 달라진다.

아마 여행 패턴을 송두리째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40여 시간의 항해 끝에 오늘같이 땅 냄새가 그리워지면 도심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밤늦게까지 노닐다 돌아오면 이것 또한 멋지지 않을까.

이번이 네 번째 크루즈 여행이라는 노신사분이 교토 관광을 한 뒤 일찍 배로 돌아와 아직은 미로처럼 얽혀 보이는 곳곳을 다녀보겠다고 한다.

분명 내게 매력을 발산할 그런 곳이 있을 것이라며 기항지 관광 채비를 한다.

빙고게임을 할 승객은 6층 쉘위댄스로 모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하늘이 시샘이라도 하듯 먹장구름이 몰려온다.

그 속을 뚫고 조깅을 하는 사람,수영을 즐기는 사람,혼자만의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보는 사람,암벽을 오르는 사람.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입맛 살려주는 별미 천국

고베 항구를 찾아줘 고맙다는 축하공연이 부두에서 한창이다.

한 점 배 위의 왜소한 자신이 커 보인다.

오늘은 무슨 음식을 먹어볼까.

다양한 국가의 음식과 서비스에 모두들 선상생활에 푹 빠져 있다.

크루즈는 먹는 여행이라고 크루즈 여행 예찬론자들은 말한다.

음식은 눈으로 한 번 먹고,입으로 또 한 번 먹는다고.맛없다는 듯한 손님의 눈초리에 망설이다 망고죽을 먹어 본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모두 뷔페 및 코스 식사가 가능하다.

뷔페가 싫은 사람은 정찬 식당을 이용하면 된다.

특별한 요리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좌석이 지정돼 있어 기다릴 필요도 없다.

선장이 주최하는 승선 환영 만찬날엔 정장을 차려 입고 참석해 정성스런 서비스에 음식 설명도 들어가며 스테이크 요리에 와인 한 잔 곁들이면 기분은 최고조에 달한다.

노래까지 흘러나오니 무엇이 더 부러울까.

■별빛 아래 흔들리는 선상 바의 낭만

한밤중 살랑 살랑대는 흔들림에 잠을 설치면 수많은 별들을 친구 삼아 어울리는 사람들을 만나러 선상 바를 찾아보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된다.

밤 공기가 차갑다고 느껴지면 카지노에 들렀다가 기계음이 싫어질 때쯤 선실로 돌아와 늦은 잠을 청해도 걱정할 것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쌀 걱정도 없으니 밤을 새워도 고통스런 여정이 되지 않는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있었다.

흘러간 시간들을 하나 하나 주워 모으고 있을 때 뱃고동 소리가 들려온다.

오륙도가 갈매기와 함께 마중나와 있다.

고베=글ㆍ사진 여창구 기자 yc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