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대하사극 ‘왕과 나’(유동윤 극본, 이종수 손재성 연출)의 5일 47회 방송에서는 중전 소화가 폐비가 되는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역사적으로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45년 ~ 1482년)는 판봉상시사 윤기견의 딸 소화로,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며 제10대 임금인 연산군의 어머니. 1474년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가 승하함에 따라 숙의였던 그녀가 왕비가 됐고, 그 해에 연산군을 낳은 뒤 곧이어 중전이 됐다. 하지만, 성종이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 찾는 것을 시기하고는 용안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결정적인 발단이 되어 1479년 6월 2일에 폐비가 됐다.

드라마 상에서 성종의 정인이었던 소화(구혜선)는 일찍 세상을 뜬 공혜왕후(한다민)의 뒤를 이어 11월 12일 23회분 방송에 이르러 중전으로 책봉되었다. 이미 10월 30일 20회 방송에서 아들 융(후에 연산군, 아역 정윤석)을 낳았던 터라 성종(고주원)의 신임은 더할 나위 없이 두터웠다.

하지만, 한명회(김종결)가 자신의 딸이자 성종의 첫째부인인 공혜왕후(한다민)가 세상을 뜨고 소화가 중전이 되면서 자신의 세력이 약해지자 노내시와 규합해 새로운 중전을 앉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 틈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설영(전혜빈)과 의기투합해온 감찰부 수장 정한수(안재모)는 그동안 궁궐을 술렁이게 한 방자인형과 독약 등에 대한 사건을 인수대비(전인화)에게 소화가 주도한 일이라고 거짓으로 보고를 올린 것.

더구나 성종의 용안에 흠집을 낸 소화는 이를 화내는 인수대비에게 그 진위를 설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오히려 인수대비와의 갈등은 심해져만 갔고, 성종과 상궁, 나인들로 부터도 점점 외면을 당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월 4일 방송에서 중전처소의 나인 버들(김정민)이 자신의 살기위해 중전 소화에 대해 거짓으로 보고하면서 인수대비는 조정과 협의해 중전의 폐비를 결정하게 됐다.

소화가 폐비가 되는 장면은 2월 4일 오전부터 수원행궁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이는 드라마상 지난 11월 11일 경희궁에서 진행된 소화의 중전책봉식에 못지않는 중요한 장면이라 촬영에 만전을 기했다.

특히, 이 날에는 소화와 더불어 인수대비와 정희대비과 함께 10명의 후궁과 25명의 상궁, 그리고 40명의 나인들 등 당시 조선시대 내명부가 총출동했다. 또한, 성종과 융, 처선, 내시들, 별감, 내금위군사, 가마꾼 엑스트라와 제작진까지 합하면 모두 3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촬영에 투입되었다.

정희대비와 인수대비 앞에 앉게 된 소화는 인수대비로부터 왜 소화가 폐비가 될 수 밖에 없는지 설명과 더불어 서인이 되어 궐밖 사가에 나가 살 것이 담긴 교지내용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는 당의와 떨잠, 가채, 운혜가 차례로 벗겨진 뒤 소복차림이 됐다.

하지만, 날씨가 영하 7도로 추운데다 강풍으로 인해 옷들이 심하게 날리면서 촬영은 NG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주인공인 소화역의 구혜선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듯 눈에 눈물을 머금고는 “신첩, 억울한 누명을 쓰고 궐을 떠나지만 반드시 다시 돌아와 신첩을 모략한 죄인들을 밝혀 그 죄를 밝힐 것이옵니다”라는 대사를 비장감있게 잘 소화해냈다.

또한, 이어서 융(후에 연산군)이 가마에 실려 떠나가는 소화를 보며 따라가겠다고 우는 장면에서는 향후 전개될 드라마내용을 암시하기도 했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된 폐비윤씨 촬영은 7시간 후인 오후 3시 30분에야 끝났다.

‘왕과 나’ 김용진CP는 “‘왕과 나’에서 이처럼 소화가 폐위가 결정되는것은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며 “조만간 성인 연산군이 등장해 소화가 폐위하는데 주도한 인물들을 처단하는 장면과 그 와중에 처선과 내시들의 역할이 어떻게 부각되는지 많이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이처럼 ‘왕과 나’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인 중전 윤씨의 폐비사건이 담긴 장면은 2월 5일 화요일 9시 55분 시청자들의 안방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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