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화 가치가 유로 엔 위안화 등 주요국 통화에 대해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약세를 보이고 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원화가 달러화에 대해 강세(환율 하락)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서울 외환시장의 최근 분위기는 이 같은 기대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달 들어 30원 가까이 오르는 '초약세'(환율 급상승)가 이어지고 있다.

23일 원.달러 환율이 3원 떨어지긴 했지만 최근 6일간 줄기차게 오르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엔.달러 108엔대 붕괴

미국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이유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확산되면서 미국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금리도 인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달러화 가치는 주요국 통화에 대해 연일 추락하고 있다.

23일 엔.달러 환율은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07.82엔에 거래돼 2005년 6월10일(107.54엔) 이후 2년5개월 만에 처음으로 108엔대가 무너졌다.

위안.달러 환율도 7.399위안에 고시돼 중국이 달러 페그제를 도입한 이후 처음으로 달러당 7.4위안을 하회했다.

유로화 역시 사상 처음으로 유로당 1.49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달러보다 원화가 더 약세인 이유

하지만 달러화가 모든 통화에 대해 '약세'인 것은 아니다.

엔캐리 트레이드(저금리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자산에 투자)가 많은 통화로 분류되는 호주달러와 캐나다달러,그리고 원화에 대해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원화 뿐만 아니라 캐나다 호주 모두 환율이 오르고 있는 이유다.

현재 원화가치는 달러 뿐 아니라 대부분의 통화에 비해 약세(환율 상승)를 보이고 있다.

이달 들어 원화는 미 달러화에 대해 2.9% 떨어진 것을 비롯해 엔화 대비 8.1%,유로화 대비 5.6% 중국 위안화 대비 3.6% 하락했다(22일 기준).싱가포르달러 영국파운드 홍콩달러 등에 대해서도 각각 2.81%,2.59%,2.48%가 절하됐다.

호주와 캐나다달러에 대해서만 각각 0.31%,2.43% 절상됐을 뿐이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외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머징마켓 통화를 팔고 강세를 보이고 있는 엔화,유로화를 사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주식을 팔아 자금을 회수하면서 원화를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또다른 이유다.

이 밖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은행들이 외화(달러)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고 한국은행이 외화자금조달 규제를 강화해 외화자금시장에 달러 품귀현상이 나타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환시장에 달러를 사려는 수요는 늘었는데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자 환율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그동안 과도하게 강세를 보이던 원화가 정상화돼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하기 직전인 지난달 말 환율을 2002년 말과 비교할 경우 원화가치가 30.4% 절상됐다는 것이다.

경쟁국인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가 각각 10.5%,3.8% 절상된 것에 비해 훨씬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에 떨어질 때가 됐다는 것이 정부 얘기다.

◆환율이 급등하면 어떤 영향이

환율 상승은 그 자체로만 보면 수출업체들에 호재다.

수출 가격이 낮아져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낮은 환율에도 선물환을 과도하게 매도했던 기업이나 수입업체들엔 단기적으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환율 상승은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고조시킬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선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동안 고유가 등 수입물가 상승 압력을 환율 하락이 상쇄해 왔지만 환율이 오르면 이 같은 효과가 사라진다.

지금과 같은 환율 상승 추세가 이어진다면 그동안 원.달러 환율 하락에 웃던 미국 유학생 '기러기 아빠'들은 우울해지고,캐나다와 호주 기러기 아빠들의 근심이 덜어지는 등 희비가 엇갈릴 수도 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