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을 겪고 있는 충무로에 새로운 '큰손'들이 몰려들고 있다.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기보다 사업성을 타진하는 수준이지만 투자 여력이 워낙 큰 업체들이어서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자산 규모 3조5000억원의 행정공제회는 내달 1일 개봉되는 전윤수 감독의 '식객'에 5억원가량을 투자했다.

전업 투자·배급사가 아닌 일반기업이나 기관이 직접투자 방식으로 영화에 자금을 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행정공제회는 올 상반기 뮤지컬 '퀴담'에 30억원가량을 투자하고,맥쿼리의 극장 체인 메가박스 인수에도 참여하는 등 문화산업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에는 문화홍보사업TF팀까지 발족시켜 영화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형규 행정공제회 이사장은 "지금은 시험 단계이지만 향후에도 '식객'의 경우처럼 한국 영화 투자 요청이 들어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생각"이라며 "사업성이 검증되면 TF팀도 정식 부서로 격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충무로에 첫 명함을 내민 성원아이컴은 지난 11일 전국 131개관에서 개봉된 외화 '카핑 베토벤'을 수입해 관심을 끌고 있다.

성원아이컴은 위성케이블 채널 운영과 광고 대행을 하는 성원건설의 미디어 자회사.최근 사업 목적에 영화 수입 및 투자·배급업을 추가했다.

신인수 성원아이컴 팀장은 "성원건설 그룹 차원에서 영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카핑 베토벤'의 성적이 괜찮으면 투자·배급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카핑 베토벤'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린 클래식 음악 영화다.

또 지난 6일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주요 주주로 참여한 자본금 70억원 규모의 창업투자회사 아시아문화기술투자㈜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이 창투사는 3년 내에 1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에 영화 등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성호 아시아문화기술투자 상무는 "공익성이 강한 주주가 참여한 만큼 예술영화 투자 등으로 민간 투자·배급사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큰손'들의 투자 타진에 대해 자금난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영화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다.

이동희 맥스창투 이사는 "일반 기업 등에 영화는 아직 리스크가 큰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어 본격적인 투자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투자 형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여 성격이거나 원금 보장 등의 이면 계약을 요구할 경우 자금난 해소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병락 KM컬쳐 부사장은 "흥행 영화를 감별해내는 능력을 단기간에 키우기는 힘들기 때문에 '큰손'들에 너무 큰 기대를 걸기는 힘들다"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