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 당국이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을 검토하게 된 데는 현행 기업 인수·합병(M&A) 제도가 공격자에게 유리한 '불평등 게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시장과 가장 가까이 있는 감독 당국 입장에서 기업들의 거듭된 요구를 무시하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이다.

또 자사주 등을 통한 변칙적인 경영권 방어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경제의 효율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공격자에게 유리한 불평등 게임은 안돼"

전홍렬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24일 "상장사들로부터 방어장치 마련에 대한 요청이 많이 들어와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적절한 시기를 봐서 법 개정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불안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대규모로 사들이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상장사들은 자사주 보유 규모가 42조원에 달하는데,상호주식 보유를 포함한 백기사 전략 등을 통해 적대적 M&A에 대응하고 있다"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은 이미 370여개 기업이 포이즌 필을 도입했고,이에 대해 일본 법원은 주주평등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다수결의 원칙에 의한 주주 전체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적법 판정을 내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또 외국에서 포이즌 필,복수의결권 등의 방어조항을 적극 운용 중인 점도 금융감독 당국의 의지를 강화시키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일본은 2002년 상법을 개정하면서 제도가 도입돼 4000여개 상장사 중 378개사가 포이즌 필을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151개사가 도입했고,올해도 200개가 넘는 회사가 참여했다.

특히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미국계 헤지펀드 '스틸파트너스'가 일본 '불독'사를 공격하면서 포이즌 필 사용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낸 데 대해 최근 일본 법원이 기각결정을 내려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상장사의 약 60%가 정관에 포이즌 필을 규정하고 있다.

투자자문기관인 기관투자가서비스협회(ISS)에 따르면 전 세계 5500여개 주요 상장기업 중 40%가 포이즌필을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처 간 엇박자 해소가 도입관건

금융감독 당국이 의지를 밝혔지만 실제 도입까지는 넘어야 될 난관이 많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간 엇박자를 해소하는 게 선결 과제로 지적된다.

재경부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M&A 관련 조항이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자본의 원활한 이동을 제한하는 '포이즌 필' 등의 M&A 규제 조치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이날 전경련 주최로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주 하계포럼에서 "최근 일본 기업들이 포이즌 필 등을 도입한다고 하는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 우리의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나 있지 않지만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면 벗어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외형상 금융감독 당국의 입장과 명확히 반대되는 발언이다.

하지만 낙관적인 해석도 나온다.

금융감독 당국 고위 관계자는 "권 부총리의 발언과 M&A방어 장치 도입이 꼭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주주총회에서 엄격한 동의 절차를 거쳐 도입하는 것은 기업 스스로의 문제이기 때문에 포이즌 필을 허용한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재경부 최상목 금융정책과장은 "중장기적인 연구는 할 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상법 개정시 포이즌 필 등의 방어장치조항 도입이 무산된 점도 걸림돌이다.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방어장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됐지만 포이즌 필이나 차별의결권제 등의 도입이 '주주평등주의'의 대의와 '주권의 등가성'이라는 원칙을 훼손한다는 의견과 충돌하며 무산됐다"고 전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